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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안부 - 쉽게 미워하고 오래 사랑하는 계절에게
백가희 지음 / 클랩북스 / 2026년 8월
평점 :

며칠 전, 처서가 지났다. 그제야 도착한 여름 책을 들고 이 책을 왜 신청했더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제목을 보고 여름은 안부를 묻기 좋은 계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유가 생각났다.
백가희 작가는 <당신이 빛이라면>, <간격의 미>, <너의 계절>, <누군가는 사랑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토록 사랑스러운 삶과 연애하기>까지, 데뷔 이후 사랑과 이별, 관계라는 주제로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으며, 케이팝부터 수영, 야구까지 좋아하는 것에서 얻은 인생의 통찰, 완주를 풀어내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뜨거웠던 모든 시절 혹은 모든 것들이 여름이었다"라는 그의 말에 괜히 내게도 뜨거웠던 것들이 있었나, 하며 기억을 헤집어 보기 시작했다. 까무잡잡하게 변색된 두툼한 어깨를 다 드러내는 민소매를 입고 시종일관 뛰어다니길 좋아했던 여름, 송골송골 맺히는 것보다 흘러내릴 정도의 땀을 좋아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여름을 좋아하고 사랑을 예찬하는 이의 글치고는 꽤 침잠하게 한다. 뭐, 사랑이 애틋이나 달달 그런 감각만 존재하는 건 이닐지 몰라도 그의 사랑은 반음 내린 것 같으면서도 마구 서글프지도 않아서 애매하달까.
개인적으로 세상을 시크하게 바라보는 시선, 과하지 않게 슬픔이 묻어나거나 반음 정도 내려선 감각을 가진 문장을 좋아하는데 이 작가의 문장도 그랬다.
이 책은 어쩌면 감정이 쉽게 도드라지는 계절, '여름'을 관통하는 44편의 산문이 담겼다. 무언가를 오래 미워하다 보면, 정작 왜 미워했는지조차 잊게 된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그에게 여름은 오랫동안 그런 대상이었다. '미움', '나', '당신', '안부'를 주제로 감정,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절을 관통한다.
작가는 영화 <소공녀>의 미소를 보면서 "저렇게 살면 좋을까 싶다가도 이내 알게 된다. 저렇게 살고 싶어 하는 나를."이라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데 또 그런 작가를 보며 나는 작가를 투영한다.
저렇게,라는 삶의 태도에 대해 작가가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보통 한심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는 건 느낄 수수 있어서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겠다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생각한다. 나 역시 '저렇게' 사는 미소가 자유롭고 뭔가 자기를 위할 줄 아는 사람 같달까. 대부분이 결핍으로 채워진 삶에서 위스키 대신 집을 포기할 수 있는 깡다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어떤 용기는 자신의 안에서보다 남들의 말 사이에서 더 결속 력을 다지고 단단해질 때도 있으니까요. 물론 내부에서 잘 다져진 용기의 밑동을 가진 채로 말입니다." 91쪽
작가가 사람 간에 배려는 자신의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라며, 단정적으로 희망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며 타인 삶에 관심이 없어진 시대를 아파한다. 나아가 누군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비관에는 염세를 토핑 하듯 뿌리는데, 그런 작가의 심정을 확인하는 사회조사 지표가 있다.
<대인 신뢰도>라는 것인데 관계에서 타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지표다. 예를 들면, 길에서 위험에 빠진 자신을 타인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과연 결과는 어떨까? 조사 결과는 열 명 중 네 명은 못 믿고 산다. 심지어 코로나 시기에는 절반 이상은 사람을 못 믿고 살았다. 그래서 <당신을 믿는다>는 감정이 좀 다르게 읽혔다.
"여름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조금 더 쉽게 다음 계절로 흘러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름답고 충만한 사랑의 틈에서, 여름의 곁에서 잘 머무시길 바랍니다. 쉽지 않을지라도 그럼에도 미워하는 마음 없이 여름과 사랑을 택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180쪽

184쪽
요즘 유명 장애인 유튜버의 행동을 두고 갑론을박 시끄럽다. 한 마디 보태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는데 작가가 "자유가 아무런 말이나 내뱉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길래, 참기로 했다. 개인 사이의 문제에서 장애가 있다는 것이 무조건 약자의 조건이 아니라는 생각이어서, 이번처럼 개인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인 것처럼 포장되는 게 참 불편하다.

200쪽
이 책은 '여름' 자체보다, 그 계절을 통해 작가는 '사랑'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저 따뜻하고 좋은 감정만으로 그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사랑은 불편하고 수고스럽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꺼이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의 '안부'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관계가 끝나거나 멀어진 뒤에도 그 사람의 시간을 계속 궁금해하는 마음이나 미움보다 끝내 사랑을 선택하려는 태도다.
일상의 느슨함과 한없이 따뜻한 시선 그리고 살짝 내려앉은 톤의 문체가 어우러져 읽는 내내 느긋한 심박수가 됐다. 마치 그의 말랑이들의 배를 연신 긁어대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