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답이다
김규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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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 그냥 답이란다. 정답이 아닌 것에 이리 안심이 되는 이유는 또 뭔지. 인생 반백줄이 넘고 거기에 또 반이 넘은지도 한참 됐지만 여전히 정답은커녕 '답'도 없이 사는 터라 월급쟁이로 답을 찾은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심지어 어깨 뿜뿜하게 자식들에게 전한다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인생에 한 가지 정답이 어디 있겠냐,라는 지론이긴 해도 살다 보면 이놈의 세상은 양극만 존재하는 걸 체감한다. 권력이 있거나 없거나, 돈이 있거나 없거나,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무례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등등의 이유로 나는 늘 을의 입장이라서 답은 정해졌을지도…. 그래서 책이 손 떨리게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백만칠천오백개쯤은 된다.


저자 김규철은 23년째 유한양행에서 근무한다. 강원대 관광경영학과 출신, 문과생으로 건축·산림·안전·식품·농업·건설·측량 등 이공계 전 분야를 넘나들며 9년 동안 국가기술자격 53개를 포함해 자격증 100개를 취득했다. 또 남양주에서 용산까지 iTX청춘을 타고 6년간 책 300권을 읽었다. 또 자격증 후기를 블로그 방문자는 179만 명을 넘었다. 그의 자격증 취득기는 여러 사람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됐다. 퇴사를 했다는 말은 없으니 아마 여전히 갓생을 살며 버티는 중이겠다.




은퇴가 유행처럼 바람을 탄 시기가 있었다. 파이어족이니, 소확행이니 등등의 현재의 삶을 안빈낙도의 자세로 살아도 좋다,는 삶의 태도였다. 나 역시 그 바람을 꿈꾸기도 했다. 저자의 루틴이 자격증 100개보다 궁금해졌다.


입시 체육을 준비하는 큰아들이 있는 걸로 봐선, 늦둥이가 아니라면 얼추 나보다 나이는 적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그의 23년 차 버팀과 100개의 자격증이란 말은 마치 내가 샌드백이 된 것처럼 자꾸 옆구리를 두들겼다.


사회복지에 종사하면서 유사 분야의 자격증을 탐낸 적이 있다. 청소년상담사, 직업상담사 등등. 국가고시는 기출문제가 다다,라며 의기양양하게 수험서를 샀다. 두 페이 읽고 더 이상 외우지 못하는 뇌를 탓하며 슬그머니 한쪽으로 치워버린 지 오래다. 공부 좀 해보겠다고 다짐했던 그 시간은 게임기 컨트롤러를 붙들고 씨름한다. 부끄러워 얼굴이 터질 지경이다.


어쩌면 퇴사가 유행인 시대에, 저자는 월급을 변호하면서 삶의 태도를 말한다. 잔소리로 가르치지 않고 편지로 부탁한다. 그래서 참 잘 읽힌다. 단문으로 적당히 뚝뚝 끊어지면서 리드미컬까지 하다. 마치 메밀국수가 적당히 기분 좋게 끊어지는 것처럼.


시작은 아버지의 정원부터다. 고로 아버지의 부재에서 깨달음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며칠 전이 아버지 기일이었는데…. 아무튼 저자는 평생 흙만 만지며 살아온 아버지의 마당 나무 앞에서, 가위 한 자루조차 제대로 쥘 줄 몰랐던 자신의 모습에 야간 조경기능사 과정을 홀리듯 신청하면서 시작된 배움의 연결고리는 9년간 자격증 100개, 6년간 독서 300권이라는 눈덩이로 불어났다고 고백한다. 뭐, 읽기에 따라서는 자랑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시작된 국가고시 도장 깨기는 굴착기운전기능사가, 산업안전사가, 조경산업기사를 따게 됐는지 이유에 대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는다. 그래서 흔해빠진 자기계발서와 다르다. 성공담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시험을 보고 붙고, 떨어지는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푼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왜 23년을 버티게 만들었는지, 그런 버팀은 자연스럽게 은퇴 이후 노년은 어떻게 계획되는지 입이 떡 벌어지는 숫자로 알려준다. 이른바 그의 '4중 방어선'. 절로 고개가 주억거리게 된다.


버티는 게 살아남는 것이라는 증거로 노인이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돌아오는 장면을 들이미는데 머리칼이 바짝 섰다. 그런 통찰을 그의 아들과 딸에게 편지 형식으로 남기는데 나는 보여줄 남길 뼈도 없다. 또 한 번 부끄러워졌다.


"100개의 자격증은 100개의 렌즈다." 86쪽


솔직히 국민연금, 건강보험, 퇴직연금, 유급 휴가 등등 겹겹이 보호되는 직장인의 방어선 예찬과 은퇴 이후의 새로운 경제 구조 낙관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베베 꼬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몸이 불편해졌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2013년부터 사회복지를 하고 있다. 근래 1년은 쉬긴 했지만 여전히 하고는 있고. 여하튼 저자가 은퇴 후 취업을 낙관하는 것처럼 100개의 자격증이 취업으로 이어질까 궁금하다. 내 경험상 쉽지 않았다. 물론, 장애가 있다는 변수가 추가되긴 하지만 재취업 시장은 나이 많고 경력 많은 은퇴자를 선호하지 않았다.


물론 직종이 같아서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기술'이 필요한 업종은 얘기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자격증은 있지만 기술이 없다면 나이가 많은 신입을 누가 반겨줄까? 같은 자격증을 가진 청년이 천지삐까리일텐데.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그러지 못함에서 오는 쩌리스러운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나는 낙관보다는 비관 쪽이 크다. 은퇴자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게 현실이긴 하니까.


126쪽


다음으로 침이 튈 것처럼 신나서 펼치는 독서 예찬을 보면서 큭, 웃었다. 100권의 유혹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그 독한 유혹의 맛을. 나도 그랬다. 성남에서 동대문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8년 넘게 했다. 다만 iTX청춘이 아니라 검은색 카니발이었다.


출근에 보통 1시간 반을 넘게 핸들을 잡고 있어야 했다. 끼어들기도 하고 끼어들지 못하게 하면서, 신경이 있는 대로 예민해져서 출근 지문 찍기도 전에 몸은 퇴근의 피로도가 쌓였다. 30분 일찍 움직였다. 그랬더니 출근 시간이 1시간 줄어들었다. 그 시간을 대부분 책을 읽었다. 서평단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렇게 1년 100권 이상의 독서는 6년 동안 이어졌다.


요즘은 게을러져서 좀 줄기는 했지만 틈만 나면 읽는다. 나도 책 읽는 게 너무 좋다. 그렇다고 저자처럼 통찰은 생기지 않고 그냥 책장에 책과 아내의 잔소리만 생겼다. 결국 책들을 회사에 퍼다 나르는 중이다.


저자는 독서가 재능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독서도 재능이라고 믿는다. 아무나 읽을 수는 있어도 꾸준히, 많이,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몇 안 될 것이다. 확실히 재능이다. 다만 독서처럼 단순한 재능은 습관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도 믿는다.


"시험장에 앉아야지 접수만 하는 건 도전이 아니고,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이미 반을 이룬 것"이라는 그의 인생 조언은 48시간 뭉근하게 우려낸 진한 사골 같은 찐득함이 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내는 아들딸에게 건네는 에세이에 가깝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 같은 루틴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의 다짐이면서 자녀와 아내에게 건네는 다정한 안부이기도 하다.


그의 혹독하리만큼 일상의 치열함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부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분명 '잘'살아 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준다. 꽤나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포기하고 혀를 내두를 것이 뻔히 보이지만 그럼에도 내 딸아들의 손에 꼭, 쥐여 주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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