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벤 존슨
이찬란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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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존슨, 이름을 보고 잠시 아득해졌다. 적막 속에 드넓은 메인 스타디움 잔디를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한 소년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88 서울 올림픽 올림픽.


필드 육상의 꽃이었던 100m 결승,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갈색 폭격기 칼 루이스 옆으로 터질듯한 근육으로 무장한 벤 존슨이 스타트 라인에 엎드리는 순간 숨이 멎었다.


화약이 터지고 순식간에 튀어나간 벤 존슨이 가슴으로 결승 테이프를 끊어낸 순간은 9초 97. 전 세계는 환호했다. 가난과 차별, 역경을 이겨낸 벤 존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기록된 그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영웅이었다.


하지만 도핑 문제로 금메달이 박탈되고 3일 만에 추락했는데 시합 전에 먹은 감기약이 문제였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렇게 벤 존슨은 깜짝 등장한 영웅에서 금지 약물 복용한 선수로 추락했다. 그의 이름이 치열했던 고3의 순간을 소환하고 있다.


작가 이찬란은 브런치에 결혼·육아·일에 대한 에세이를 올리면서 마흔이 돼서 글쓰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에세이 <나의 경우엔 이혼이라기보다 독립>을 썼고, 이 책은 그의 첫 소설이다.




이렇게 강렬한 이름을 소설 제목으로 가져온 이 책이 흥미로웠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기대보다 훨씬 더 따뜻한데 한편으로는 쓸쓸한 이야기여서 꽤나 오래 여운이 남았다.


158쪽


벤 존슨의 이야기에서 고시원에서 쫓겨난 '호달'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전국소년체전 출신의 자칭 벤 존슨을 만나며 흥미진진해진다. 쩌리들의 팍팍한 현실을 충분히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는 담담한 톤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무너지고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군상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소설인데도 현실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지는데 어딘가 모자라고 조금 무례하기도 하고 서툴러서 자신의 삶도 감당하기 버거운 인문들이 타인의 문제를 외면하지 못하는 지점이 소설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작가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미안해진다.


나 혼자 먹고살기에도 팍팍한, 각자도생의 시대에 작가는 결국 그들도 타인과의 관계 덕분에 버틸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게 막 감동적이라기보다 뭉근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감이 있다.


197쪽


이 책은 도망치고, 살기 위해, 덩달아 달리는 이야기는 내용 전체에 달리는 감각을 관통하는데 이야기는 결국 성공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 추락해도 버텨내야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지치고 피로한 요즘의 내 이야기 같은 느낌이 강해 몰입하며 읽게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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