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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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확실한 내 편이라고 믿은 품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경험이 있다." 32쪽


아직은 고작 <매끈하게 움푹한 곳>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 어느 책보다 감각적이라는 느낌이 좀 들어 설렌다. 벌거벗은 모에카가 누아르에 감겨 있는 모습이 아니라 사랑을 고민하고 검열하는 마음이 그랬다.


분명 '누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거기다 확실하게 믿는 사람에게 미끄러져 떨어지는 일이…. 나는 아버지였으려나. 대형 병원 구석진 한쪽, 어두컴컴한 복도 끝에 비교적 다른 창보다 큼지막한 창으로 어둠이 빛처럼 쏟아지는 새벽, 아버지는 이제 그만 치료를 포기하자고 했었다. 아마 조금 눈물이 났던가.


일본 치바현 출신으로, 2010년 <꽃에 눈멀다>로 R-18 문학상을 수상한 아야세 마루는 소설가로 꾸준히 주목받으며, 2016년 <이윽고 바다에 닿다>로 제38회 노마문예신인상 후보, 2017년 <치자나무>가 제158회 나오키상 후보작, 국제 문예지 <그란타>가 차세대 일본 문학의 주목할 작가로 알려졌다.





장례와 신발과 망자와 축하 케이크로 연결되는 이 조금은 기괴한 연결이 이상하게 감각을 자극하며, <230밀리미터의 축복>은 그렇게 시작되는데, 문득 아마미 루루코처럼 '어딘지 연약해 보이고 행복이 흐릿한'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라고 생각했다.


덩달아 학창 시절의 기억을 더듬거려도 도무지 찾아낼 수 없는 얼굴이라서 신기루 같았다. 그나저나 아내 메이코에게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다가 결국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면 인간은 오히려 웃게 되는" 것을 깨닫는 것 역시 예사롭지 않고.



78쪽

191쪽


이 책은 각 이야기 속 인물들의 극적인 사건을 다루지는 않는다. 오랜 연인 사이에 생겨난 거리감, 가까웠던 사람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선가 변질되고 있다는 예감 같은 그런 내밀하고 미묘한 균열을 감각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기억의 달팽이라든가 손가락에 반한 다거나 하는 판타지 같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서도 꽤 많은 내용과 부분이 감각적이라 읽는 내내 기분이 조금 달떴다.


이 책은 사랑, 불안, 집착, 갈망, 이별의 기척, 관계의 흔들림을 통해 이 책은 분명 읽으면 읽을수록 끝을 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감각적이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로 책장을 덮는 순간엔 곁에 있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그런 책이다. 재밌는 건, <매그놀리아 남편>의 이쿠토 이야기는 왠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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