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텐스 출판사가 '문장의 기억'이란 콘텐츠 중 버지니아 울프, 안데르센에 이어 세 번째로 선택한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전작들을 읽으면서 주옥같은 문장을 길어 올린 역자의 감수성에 얼마간 감탄했던 터라 이번 책도 주저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잘 모르는 편이라서 그가 작품 속에 풀어 놓은 인간 심리를 엿볼 수 있다니 기대된다.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셰익스피어가 작품 속에서 사용한 단어가 2만 단어 정도인데 이 중에 10%인 2천 단어가 당시에 쓰지 않던 신조어였다고 하니 역시 그는 진정 천재가 아니었을까.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37편의 희극 그리고 시로 분류되는 소네트 154편 등 그가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들 중에 엄선하여 사랑과 운명, 로맨스 코미디, 정의의 딜레마, 욕망과 권력을 주제로 14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복잡한 면면들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해온 셰익스피어가 작품에 녹여낸 인간의 심리를 엿보게 해준다. 거기에 역자가 뽑은 주옥같은 문장도 소개한다.
대다수의 다른 책처럼 <십이야>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줄거리가 영화처럼 펼쳐지고 쌍둥이 남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누구든 '일방적인 사랑을 피곤하다'라는 핵심 요약은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것처럼 한방에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저러다 심해지면 데이트 폭력이 될까 싶은 사랑 이야기다.
사랑 이야기 그것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면 <로미오와 줄리엣> 만한 것도 없지 않을까. 어릴 때 보았던 줄리엣은 올리비아 핫세였고 시간이 지나 쉰 중반이 된 지금도 내게 줄리엣은 여전히 그렇다. 한데 로미오는 왜 예나 지금이나 디카프리오지? 아무튼 작품의 줄거리와 해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56쪽, 로미오와 줄리엣
"To be in love, where scorn is bought with groans; Coy looks, with heart-sore sighs; one fading moment’s mirth, With twenty watchful, weary, tedious nights.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비웃음을 신음으로 사고, 무심한 표정을 가슴 아픈 한숨으로 사고, 짧은 순간의 기쁨을 스무 번의 긴 지루한 밤과 맞바꾸는 것이야."
86쪽, 베로나의 두 신사_sentence101
"Experience is by industry achiev’d, and perfected by the swift course of time. 경험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완벽해졌어요."
91쪽, 베로나의 두 신사_sentence111
그의 작품치고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베로나의 두 신사>라지만 사랑에 대한 통찰은 역시 깊다. 사랑 따위 개나 줘버려,라고 얕잡아 본 발렌타인이 실비아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비추어 '비웃음을 신음으로 바꾼다'는 사랑 표현은 기가 막히다.
또, 생소했던 <심벨린>은 등장인물 간에 속고 속이며 계략들이 난무하는 치밀하고 거대한 서사에 원작이 궁금하기까지 할 정도다. 한 권으로 읽는다는 부제처럼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짧게나마 내용을 접할 수 있고, 그중에 역자가 꼽은 문장을 필사할 수도 있어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