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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평점 :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미국에서 태어난 고은지는 컬럼비아대학에서 문예 창작과 번역학으로 석사를, 워싱턴대학에서 영어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시집 <시 시한 사랑>으로 플레이아데스 프레스 편집자상을 수상했고, 2020년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마법 같은 언어>는 워싱턴주, 퍼시픽 노스웨스트, AAAS 도서상을 수상하고 펜오픈북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드라마 <파친코> 작가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24년 젊은 사자상 소설 부분 수상작인 이 책은 그의 첫 소설이며, 한국에서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던, 한인 공동체에서 펼쳐지는 이민자 가족의 아픔과 희망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소개한다.
얼마 전, 흥행몰이 했던 영화 <미나리>나 드라마로 제작된 소설 <파친코>에서 그려진 이민 2, 3세 들의 삶이란 현실은 아프고 고단하지만 희망을 놓을 수 없다는 신파를 벗어날 수 없지 않을까 싶어 보지 않았는데 <해방자들>이란 제목이 눈을 잡아 끌었다.
이민자가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을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방’이란 단어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집단으로부터 일까? 이민자의 편견과 차별로부터일까? 아니면 그들의 삶 자체일까? 어디로부터의 해방일까라는 궁금증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이 다른 이민자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흥미롭다.
하… 책장을 펼치자마자 “이 책은 허구입니다.”라는 문장에 힘이 쫙 빠졌다. 소설은 허구가 기본이지만 이민자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경계들은 널려 있으므로 이 책은 완전 허구는 아닐지 모른다.
음… 얼마 읽지도 못하고 답답함이 차올랐다. 요한의 이야기가 그랬다. 성호의 이야기에 앞선, 그 서슬 퍼렇고 무자비했던 군인들의 진압이 있던 80년의 요한의 이야기는 정리되지 않은 채 성호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남주, 인숙 그리고 끄트머리에 잠깐 등장한 성호까지의 관계도가 흐릿해서 답답함이 남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분단의 시대, 이념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게 만들던 시대로 거침없이 거슬러 오르는 내용에 소름이 돋았다. 학살이 자행된 1980년은 내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쉬쉬 거리며 돌던 그때의 참상을 담은 사진을 어느 성당에서 입을 틀어 막은 채 보고 말았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놀란 눈을 한 어른들은 재빠르게 내 눈을 손으로 가린 채 밖으로 밀어냈다. 어디에서도 사진을 봤다고 하면 잡혀 난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아직도 멀었다.
54쪽
일본이 패망하고 전쟁이 끝나자 땅덩어리가 잘렸다. 분단된 땅덩어리에서는 일본의 앞잡이들이 미군의 앞잡이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념과 정치에서 주춤거리던 선량한 사람들은 그저 살아남았다고 안도하기 바빴다.
정치를 모르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이가 쫓겨나자 군복을 입은 일본 앞잡이가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살자며 노동을 강요했다. 친미 하는 그와는 다르게 반미 하는 학생들과 사람들은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반미를 외치던 사람들은 점점 더 불어났고 덕분에 군인이 총을 맞았다. 그렇게 독재의 시대가 가는 듯했지만 더 악독한 군인이 탱크를 앞세워 정권을 탈취했다. 역시 친미였다. 미국은 눈과 입을 닫았다. 그의 손에서 광주는 피로 물들었다. 여전히 광주는 피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상상의 허구라지만 일본의 패망 후 군부독재의 시대, 제주 4·3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등 한반도를 뒤흔든 굵직한 근현대사의 암울한 현실을 그려내는 통에 내 기억도 그 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80년대 말 입시를 앞둔 시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 가스를 마셔야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참혹한 시대에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학생들이 고문으로 죽어 나갔다. 하지만 악마 같던 ‘고문 경찰’ 이근안은 형벌을 피한 채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손에 죽어 간 학생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살아 남아 있다.
그는 참회는커녕 ‘기사와는 다르게 자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 그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건 그 시대를 통째로 기억해 내야 하는 분노에 휩싸이는 일이라 힘들다.
후란과 인숙 그 사이에 성호와 로버트의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술술 읽히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각 인물들이 분절되는 느낌이랄까? 거기다 곳곳에 논쟁을 불러올만한 민감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이제는 의도적으로 지워져버린 ‘통일’에 대한 이슈나 눈에 담기에도 섬뜩한 ‘내전’이란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 자아는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보는 능력에 의지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자마자 독재자가 돼.” 181쪽
한국의 현재 상황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 같아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권력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던 그는 권력을 잡자 말과는 다르게 양파처럼 까도 까도 치부는 계속 드러나는 데도 도덕적인 독재자처럼 굴고 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멈추지 못한다. 로버트가 당구장에서 맞닥뜨린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랄까.
각자의 현실에서 각자의 입장대로 살면서 비틀리고 곪아서 터질 지경이었던 인숙과 성호, 후란의 관계의 단절이 너무 쉽게 허물어지는 것 같아서 솔직히 살짝 허무했다.
매듭조차 보이지 않게 얽혀있던 관계가 딱히 (사소한) 계기도 없이 이렇게 쉽게 풀릴 수 있을까? 아니면 후란의 죽음이 매듭이었던가?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긴장감에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가 괜히 그랬다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한국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한국이 될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로버트는 무엇을 꿈꿨던 것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배운 나는 이제 어느 누구도 소원이 통일이라고 노래 부르지 않는 현실이 이상하지 않은데 결국 한국을 떠나야만 자유로운 한국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의문인 채로 로버트는 자신의 머리통에 총을 쐈고, 인숙과 성호와 헨리와 제니 그리고 하루는 갑자기 행복해졌다. 그렇게 책은 끝났다.
어지러운 이데올로기에서 각자의 신념과 이념을 확고히 정립하지 않은 채 이민자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이 그려내는 이 책은 한 가족사를 해방과 광복과 전쟁과 분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민자의 삶으로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게 굉장하다.
오욕의 역사와 시대의 아픔을 견뎌낸 사람들의 그 끝이 절망이 아닌 희망이라서, 개인에서 연대로 서로를 치유해오고 있음은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