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 청미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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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화를 상상한 소설. 일본 나오키 상과 서점대상을 석권한 첫 번째 작가인 미우라 시온의 소설.


깊은 숲 속, 계절의 색과 냄새 그리고 그런 것들을 상상하는 것까지 숲의 변화를 생생하게 그려 낸다. 어느 순간 코 끝으로 피톤치드가 몰려드는 느낌이 들 정도여서 숲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변화는 경치뿐만 아니라 냄새와 소리에도 나타난다. 겨울 동안 딱딱하고 차갑게 들리던 시냇물 소리가 초목에 싹이 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갑자기 부드러운 졸졸졸 소리로 바뀐다. 물은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아지고 달큼한 냄새를 풍긴다.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강바닥 모래에 투명한 송사리 떼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64쪽, 가무사리의 신령님


책의 중간 쯤, 세이치의 아이 산타가 없어진 장면에서 <이웃집 토토로>에서 천방지축 메이가 사라진 장면이 겹쳐져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나무를 타는 바람은 역시 토토로다.


미래 따위는 별 관심 없던 찐 도시 소년 유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타임 워프라도 한 듯 비자발적으로 인적 드문 산골 오지의 숲속 마을로 강제 송환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이 소설은 제목처럼 느긋한 나날이라기 보다 꽤나 버라이어티하게 한순간도 느긋하지 않은 마을의 일상이 펼쳐진다.


때론 느긋한 일상을 즐기기도 하지만 갑분싸해지는 마을의 신성한 의식이나, 벌채, 삼나무 롤러코스터 등 긴박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내용에 몰입도가 굉장해 헤어나기 쉽지 않다.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어랏! 자연 공부도 된다. 빼곡한 숲의 나무는 인간이 싸놓은 이산화탄소를 빨아 들이고 인간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많은 산소를 쏟아 낸다고 알았다.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뿜어 낸다고는 상상도 안 해봤는데 나무는 평소엔 산소를 들이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뿜는다. 광합성을 할 때만 우리가 알고 있듯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뿜는다고 한다. 혹시 나만 무식한 걸까?


138쪽, 여름은 정열


"매미 소리가 마을을 둘러싼 산들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공기가 맑아서 햇살이 바로 살에 꽂히는 느낌이라 따가울 정도다. 뜨뜻미지근한 바람을 타고 풀숲의 열기가 집 안까지 들어온다. 벼에는 이삭이 패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옥수수는 줄기를 따라 서로 엇갈리듯이 달려 익어가고, 온 사방의 밭에 수박이 널려 있다. 한여름이다." 154쪽, 여름은 정열


한여름을 표현하는 이 멋진 말들이 읽는 내내 있다면 당장이라도 들판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매미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햇살이 살에 바로 꽂히다니. 그 맑은 공기를 맡아 보고 싶다. 게다가 '가무사리의 여름 경치가 박력이 넘친다'니 어떻게 이런 표현을 만들어 내는가 말이다. 신의 영역이 아닌가!


"논에서 무겁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벼가 서로에게 몸을 부비는 소리가 들려왔다." 213쪽, 불타는 산


"한편으로는 뭔가 고요 했다.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도, 새소리도, 우리의 숨소리마저도 숲을 이루는 몇백 년의 나이테에 빨려 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247쪽, 불타는 산


출근 길,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다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빼곡히 조성된 가무사리 산을 생각한다. 환경을 위해, 나무가 산에서 건강하고 잘 자라기 위해 인간이 조림을 하는 곳.


제주도에도 인간이 십 수년 전 조성해 만든 그런 삼나무 숲이 있다. 가보면 알겠지만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와 생명력과 허파를 심하게 정화해 주는 찬 공기가 있다. 사진에 담으면 멋은 덤이다.


그런데 가무사리 산과는 달리 제주도는 키 큰 삼나무 때문에 토종 식물이 자라는데 방해가 된다 하여 갈아 엎는다는 뉴스였다. 이미 십 수년을 뿌리내리고 잘 자란 녀석들 역시 산의 일부가 됐을 텐데 손바닥 뒤집듯 이제 와서 그렇게 쉽게 갈아 엎는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일본은 심고 우리는 갈아엎는다.


273쪽, 불타는 산


다 읽고 나서야 저자가 3개월 만에 쓴 글로 등단하고, 나오키 상, 서점대상, 오다사쿠노스케 상, 시마세 연애문학상, 가와이하야오 이야기 상, 일본식물학회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걸 알았다. 한데 이 정도 상을 휩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밌고 긴장감 넘치고 판타스틱하다. 가능하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음 작품이길 기대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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