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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옆집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부자형아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6월
평점 :
퇴사를 앞둔 마당이라 그런지 제목이 무시무시했다. 또 한편으로는 빛내서 집 사라고, 창업하라고 부추기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민낯이기도 해서 마음이 쓰이는 제목이었다. 얼핏 퇴사하려니까 두려운 마음이 겹쳐진 걸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망하지 않는 사장님이 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문장에 한참 머뭇댔다. 나는 무얼 하려는 걸까.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용감무쌍하게 프랜차이즈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폭망한 저자의 생생 후기 같은 책이다. '성공은 실패를 피한 후에 온다'라는 저자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한때는 대박의 꿈을 품고 2001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열었다가 집을 날려 본 내게는 참 비수 같은 책이다.
주인공 수호가 맨땅에 헤딩하면서 겪은 경험치고는 술술 읽혀서 미안할 지경이다. 부모님의 흥망을 지켜보며 창업이 답이라는 결론으로 시작한 반찬가게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창업 준비과정부터 프랜차이즈 회사의 악랄한 꼼수에 당하고, 직원들에 치이고 세금 폭탄에 흔들리는 가정사까지 적나라하게 다 담았다.
그렇다고 내용이 다 와닿는 건 아니라서, 수호의 허영 끼랄까 허세작렬이랄까 얇아도 너무 얇은 그런 팔랑귀 같은 감정선이 지속돼서 확실히 피로도가 있다. 사실 엉겁결에 프랜차이즈 계약을 시작으로 매도 컨설팅 업체에 속는 걸보면서 당장 책 속으로 들어가 꼴밤 한대 쥐어박고 말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래서 수호는 신중함이라곤 1도 없는 데다 전형적인 P가 아닐까 싶다.
88쪽, 나도 이제 사장님
나 역시 그때 그랬을까.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실무자로 8년을 일했다. 몇 년 동안 외국 작품의 재하청만 하다 보니 국내 창작물에 갈증이 심했다. 그동안 쌓은 경력과 인맥들도 엄지 척 해주며 일감은 걱정 말라고 바람을 넣었다. 창공에 떠있는 애드벌룬 마냥 한껏 부풀어서 스튜디오만 열면 대박이 날줄 알았다.
이휘재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아래로 힘껏 내리며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며 신혼집을 빼서 제작 스튜디오를 열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코가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은 몰랐다. 딱 1년을 버티고 문을 닫았다. 벌써 20년이 다 된 일인데 아픈 건 여전하다. 수호와 나는 참 많이 닮았다.
이런 이런 책장이 넘어가면 갈수록 자영업, 그중에 요식업에 대한 노동강도의 어마어마함을 실감하게 된다. 여기에 수호의 딜레마까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부 음식점을 운영하는 지인이 골머리를 싸매는 것과 수호랑 같아서 공감의 농도가 훨씬 깊다.
"내 몸 아픈 것보다 하루 매출이 떨어지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 167쪽,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
지인 부부 역시 새벽같이 가게로 나가 두부를 씻고 직접 두부로 만든다. 그러고 나면 그 두부로 요리하는데 늘 뼈를 갈아 넣는다고 한다. 그렇게 월 2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면 그중에 3할은 병원비로 날린다고. 결국 골병든 지인 부부도 10년을 운영한 가게를 바닥 권리금만으로 내놓았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순이익이 월 500만 원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연봉으로 치자면 6,000만 원 정도. 사실 그렇게 많은 금액이 아닌 것도 같지만 알고 보면 사회복지사 입장에서는 상상이 안 되는 액수이기도 하다.
이 액수는 수호가 갈아 넣은 근면 성실함의 결실이라 생각하니 더 대단하기도 하고. 요즘 워라벨이니 욜로니 하며 당장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외치며 삶의 질을 위해 노동의 강도를 낮추려는 추세가 아닌가. 이런 시대라서 그의 피 같은 조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183쪽, 소 귀에 경 읽기
"참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실패해도 괜찮다. 우리는 아직 젊고, 그걸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 273쪽, 실패해도 괜찮아
정말일까? 정말 실패해도 괜찮고 젊으니까 망해도 경험이 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나는 2001년에 딱 그 마음으로 창업을 했고 딱 1년 만에 접었다. 30대 초반이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은 턱도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폐업 이후 하던 애니메이션을 하기 어려웠다. 취업도 쉽지 않았고 프리랜서로 한다고 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전혀 다른 업종으로 늦깎이 신입의 길로 새로 시작해야 했다. 이 시대는 실패에 전혀 관용적이지 않아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사람만 설 수 있다. 함부로 도전을 외칠 일은 분명 아니다.
수호가 처음에 밝혔던 것처럼 실패는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선을 다해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찾고 난 후 하는 게 창업이다. 아파트 전세금 날리고 부모님 댁에서 얹혀살면서 아이들 키우고 사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고단하다. 나는 다시 독립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창업하고 얻은 거라고는 나는 사업할 체질이 아니라는 교훈이 다였다. 1억과 맞바꾼 것치고는 많이 아프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 나간다. 창업을 결정하면서 갖게 된 들뜬 마음부터 준비 과정과 운영의 여러 어려움 등을 잘 보여준다. 읽다 보면 막연히 창업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작을 하려면 그만큼 다양하게 벌어질 변수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노파심 어린 충고가 깔렸다.
창업이 누군가에게는 부자로 가는 튼튼한 동아줄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 누군가에게는 더 절박한 나락을 밀어 넣는 입구가 될지도 모른다. 부자나 성공이란 열차에 오르려는 욕망만으로는 열차에 오를 수 없음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부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진리가 빼곡히 담긴 책이다. 예비 창업자라면 두들겨 봐야 할 돌다리처럼 꼭 필요한 책이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