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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전유성 지음 / 허클베리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예전에 '3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잘한다'라는 컴퓨터 관련 시리즈 책으로 온 국민을 컴맹 탈출 시키려 애썼던 장본인이기도 하고 개그맨들이 멘토로 꼽는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 빼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가 그의 이야기를 썼다 해서 호기심이 났다.
또, 스치듯 본 추천사에서 '농담이 깊어지면 이런 여운을 남긴다'라는 문장에 홀리기도 했고. 남인숙 작가를 깊은 여운에 빠트린 농담을 찾아 지구로 간다.
작가 소개를 볼 필요도 없는 작가지만 그래도 어떤 기막힌 농담을 던져 놓았을까 싶어 펼쳤다가 느닷없이 뒤통수가 쎄 해지는 질문을 봤다.
코 찔찔 하던 나이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심심했던 순간이 있었나? 대학 가랴 취업하랴 돈 벌고 놀 시간 없이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가장이라고 더럽고 치사해도 월급에 목매달고 사느라 심심할 틈이나 있었나 싶다.
심심하냐고 물을 게 아니라 싱싱하냐고 물었으면 단박에 아니요, 축 처진 동태 눈깔 하고 살아요라고 쉽게 대답했을 것을 그의 질문에는 목울대가 콱 막혀 대답을 찾지 못하겠다.
다행이다. 난 단박에 알았다. 사도 세자가 왜 웃긴지. 책은 그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을 조금 풀어 놓았다. 생각건대 어슬렁거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지 가늠할 수 없지만 분명 엄청나지 않을까 싶으니 분명 조금이 맞겠다 싶다. 거기에 쿡 하고 입바람 새는 유머 코드와 신박한 아이디어는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난다.
혁신의 정의를 풀어 놓으면 이런 말이 아닐까?
"남이 만들어놓은 룰을 따르기만 하면 새로운 일은 벌일 수 없다. 남이 안 해본 일을 하려면 룰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83쪽, 우리 집 고스톱 룰
그런 룰을 못 만드니 내가 혁신을 할 수 있을 턱이 있나. 나 같은 범인은 늘 하던 것을 하던 대로 해야 마음이 편하다. 하던 것을 비틀고 하지 않은 방향으로 하려면 멀미가 나는 법인데 그는 그게 재밌게 사는 법이요. 상상력의 원동력이라고 꼽는다.
불면에 시달리다 읽기 시작한 책이 동이 트기도 전에 끝을 봤다. 독자 안녕이라고 할 뻔한 작가의 농담들이 허투루 들리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가 끝났다. 확실히 그는 나와는 다른 뇌 구조를 가진 것을 실감하면서 장례식장 화환 문구는 꼭 한번 따라 해 봐야겠다.
삶치의 삶 안에서 끊임없이 허튼 생각을 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노고가 담긴 듯해서 이게 또 마냥 허튼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전유성이란 이름만 아는 사람이라면 전유성을 아주 조금 알게 되는 책이고 엉뚱한 상상력을 키워보고픈 사람에겐 딱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