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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
작가 水 지음 / 좋은땅 / 2023년 11월
평점 :
유혹됐다. 파우스트를 환락의 구렁텅이로 이끌었던 그 악마의 유혹과 지우개라니. 제목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나이 들고 더 이상 없어졌다 싶었던 호기심이 발동했다.
더구나 아동청소년 영어교육 드라마를 개발하는 작가 겸 프로듀서 일을 십수 년 하고, 임신과 더불어 공황장애까지 겹쳐 비자발적 전업주부가 된 작가가 고전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써낸 글이라니 놀라기도 하고.
표지도 그렇고 기억을 잃어가는 '상실'에 대한 단편을 모은 소설인 줄 알았다. 한데 2013년 한국문학예술 드라마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를 포함한 5개의 드라마 시나리오 모음집이다.
과거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때,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써보겠다고 용쓰던 기억이 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읽을 만큼 순식간에 끝을 봤다. 재밌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빠져들었다.
우연히 고향 친구를 만나게 되고 달라진 외모에 현혹되어 '젊어지려'라는 유혹에 걸려든 주인공. 결국 끝은 파국으로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 한데 누가 메피스토펠레스 역할이었을까. 늙은 간호사? 아님 유미? 시정이 아들을 잃은 기억을 잃었던 것에 좌절하던 순간과 홈쇼핑 론칭에 등장한 시점의 시간 차는 열린 결말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이야기가 증발된 기분이다.
144쪽, 호상
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내게 한국 돌봄의 현주소를 현장보다 생생한 느낌으로 전하는 <호상>은 어쩌면 큰 짐이자 숙제를 안겨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슷하게 <수목장> 역시 안락사를 다루는데 몇 해 전 노환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식물인간으로 중환자실에서 생명 유지만 하고 계신 노모의 상태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지인이 생각났다.
264쪽, 수목장
특별한 치료도 없이 중환자실에서 그저 생명 유지 장치를 꽂고 계신 노모의 한 달 병원비가 자신의 월급보다 더 많다며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노모가 의식 없는 하루를 연장하면 자신의 빛이 그만큼 늘어난다고 연명치료 중단을 고려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내가 그 입장이면 어땠을까. <수목장>은 그때 그 질문을 다시 하고 있었다.
요즘 영화관을 뜨겁게 달구고 1000만 관객이 훌쩍 넘은 영화 <서울의 봄>이 전두환이 일으킨 12•12 사태(쿠데타)를 회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새순>이 다루는 5•18광주 민주화운동이 더 뜨겁게 다가온다. 그 12•12사태 5개월 후에 일어난 비극적인 일이 바로 <새순>의 배경이 아닌가. 내 나이 10살의 봄이었다.
이 시나리오집은 모두 '기억'을 주제로 연극 혹은 드라마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과거의 일을 현재로 끌어와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으며 외모에 대한 탐욕을 보여주거나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국가 시스템을 꼬집고,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연명치료와 안락사 문제의 자기결정권과 인간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공감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무대와 화면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몰입도 넘치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한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