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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랑 아니면 사람 - 사랑을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추세경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아, 이렇게 짜릿한 제목이라니. 어차피 인생은 도 아니면 모, 그렇게 사람과 사랑의 차이는 어쩌면 한 끗 일지도. 제목부터 아주 흥미진진 하다.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위대한가, 갸우뚱한데 작가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했다, 가 그래도 나는 아닌 거 같다고 결론을 내린다. 출근하면서 퇴근을 염원하는 직장인이 위대하면 그것도 곤란하겠다, 싶어서.
신소리는 그만 두고. 출퇴근 하면서 글을 쓴다는, 이기적인 글쓰기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작가라는 소개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 홀로 피어난 꽃처럼 나답게, 그렇게>라는 무척 긴 제목의 책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소설을 쓰는 중일 지도 모른다. 아, 남자다.
뭐랄까, 조금 독특한 사람이랄까? 스스로를 궁서체(진지한 생각만 하는)라고 말하는 사람은 살면서 별로 못 봤는데, 작가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살아가는 글이 살아 있는 글이 되기 바란다"라는 그의 글쓰기가 얼마간 편안해진다.
58쪽, 여름의 이름으로
읽다가 고통은 개별적이라는 그의 글에서 순간적으로 끌려와 재생되는 장면이 있다. 추억이라 하기엔 아프다 깨달음이 있던 순간이었다. 친구가 운영하던 가게를 고민 끝에 폐업을 결정했을 때 위로차 친구 몇이 모였다.
학교와 맞닿아 있긴 했으나 정문이 아닌 후문, 그것도 굳게 잠겼던.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굳이 담장을 넘어서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맛을 팔지 못하던 가게를 1년을 버티다 문을 닫았다.
위로차 모였으니 술잔을 기울이다 서로 "나도 힘들다"라는 하소연이 눈치도 없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듣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너희들이 나만큼 힘드냐"라고 스스로 불편한 몸을 무기 삼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하나가 "너 힘든 건 잘 안다. 하지만 네가 제일 힘들 거라고 말하진 마라. 콩알만 해도 각자 자기가 짊어진 문제가 제일 힘든 법이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 소리에 처음에는 섭섭했다. '펄펄 날던 친구가 휠체어 의지해 사는데도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지?' 해서다. 그렇게 마상을 심하게 입은 채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 말이 옳았다. 손톱 밑에 가시도 내 손톱 밑이라면 겁나 아프다는 걸 새삼 깨닫던 시간이었다. 그 친구는 여전한 몇 안 되는 절친이다.
또, 이미 성공의 서사로 유명한 사람들을 거론하는 한편, 그만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이 아닌 아직 성공하기 전의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의 성공도 바라고 내 성공도 바라게 된다.
153쪽, 이어져서 산다는 것은
163쪽, 스쳐가는 월급 속에 한 번뿐인 인연이라도
그가 만났다는, 가난이 부끄럽지 않다는 그를 만난 여행에서 그가 느꼈던 감정들을 나도 모르게 따라 간다. 나는 가난을 이해? 공감? 하고 있을까.
어릴 때는 엄마에게 자주 듣던 말이 '집에 돈이 말랐다'거나 '돈 한 푼 없다'라는 거였다. 월사금이 밀려 담임에게 얻어터지고 맨 뒷자리로 쫓겨 날 때, 나는 가난 했을까?
그러지 않았던 거 같다. 그때 반 아이들 반 이상은 월사금이나 육성회비 때문에 얻어 터지고 맨 뒷자리로 쫒겨 났으니까. 그렇게 쫓겨난 아이들 때문에 되레 나는 또 앞자리로 밀려 들었으니까. 그런 친구들과 가난으로 주눅 들고 아파하지 않았다. 키득거리고 놀기 바빴으니까. 그저 생각이 없었을지도.
사실 그때의 가난은 도시락 반찬으로 프랑크 소시지를 싸와 뚜껑을 반쯤 덮은 채로, 전쟁터에서 적군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프랑크 소시지를 엄호하면서 날쌔게 하나씩 집어 먹던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가난은 마음에서부터 오는 건지도 모른다.
책은 묵직해서 머리를 누를 만큼 생각거리가 많기보단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편안하게 읽힌다. 복잡다단한 인간 관계에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덧입혔다. 한참 생각하고 심각하게 고민스럽게 만들지 않고 독자도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처럼 아주 친근한 이야기다.
질퍽한 사랑이나 난삽하지 않은 익숙한 글감으로 써낸 그의 이야기는 그냥 술술 읽어도 좋은, 그런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