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삶을 돌아보던 그는 우리네 인생과 닮은 탁월한 비유 하나를 들려주는데 설명하기 까다로워 본문 중 일부를 그대로 발췌해 옮긴다.

˝ 동양의 옛 우화 중에 스텝에서 맹수와 마주친 나그네 이야기가 있다. 나그네는 맹수를 피하기 위해 오래전 말라버린 우물로 뛰어들었는데, 우물 바닥에는 그를 단숨에 집어삼키려는 듯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불행한 나그네는 밖으로 나가 맹수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싶지도 않고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 용에게 잡아먹히고 싶지도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우물 벽 틈에 난 덤불 잔가지에 매달려 버텼다. 차츰 손의 힘이 빠지자 그는 양쪽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으리라 느꼈다. 그래도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는데, 어디선가 검은 쥐와 흰 쥐가 기어오더니 그가 매달린 덤불 가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가지가 뚝 부러져 용의 아가리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나그네는 죽음을 피하지 못 하겠다고 체념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덤불의 잎에 꿀이 몇 방울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혓바닥을 내밀어 핥았다. ˝ 34p

‘안수정등‘이라 불리는 설화에 대한 단상

절박한 상황에서의 꿀 몇 방울은 당장에 견뎌낼 힘을 준다. 하지만 벌들의 것인 벌집을 가지려 들 순 없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매달린 가지를 갉아대는 쥐들을 내몰지 않고서는 용에게 먹히고 말 운명. 그런 쥐들에게 악의란 없을지도 모른다. 시기의 차이일 뿐,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내모는 그 쥐들, 사자, 용에게는 어쩌면 표정이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신‘이라고도 불릴만한 무언가에서 비롯된 자기명령에 복종하고 그에 따라 제 삶의 몫을 다할 뿐일지도. 혹시라도 그들이 화난 표정을 지어보이는 와중이라면 탈출은 더 쉽지 않을 것이다. 밖을 나선다 한들 언젠가는 대면할 수밖에 없는 사자. 나서든 나서지 못하든 물을 찾기 위해서라면 주기적으로 우물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팔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있고 체력이 뒷받침된다면, 끝내 우물 밖으로 나와 새삶을 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건네줄지도 모르겠다. 기약 없지만, 사랑의 힘을 믿는 누군가였으면. 역으로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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