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릿대 베개
마루야 사이이치 지음, 김명순 옮김 / 톰캣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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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근무하는 하마다는 도둑을 보고도 무행동으로 방관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망자 시절 함께 했던 아키코의 사망통지가 하마다를 전쟁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전쟁 때 징병 기피로 일본 전역을 도망다니던 하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아키코, 전쟁이 끝나고 그들의 관계도 끝났고 아키코는 후처로 들어가 살다 이혼하고 결국 암으로 죽었다.

다른 직원들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징병기피 사실을 다른 직원들이 알고 있고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전쟁을 싫어하고 살인행위가 싫어 징병을 기피했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에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화해 가고 있는 시대상황 속에 자신의 징병기피 행위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와 범죄자로서 각인될 수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나면서도 더욱 움추려지는 하마다...

모래화가, 시계수리공, 리디오 수리로 생계를 근근히 유지하며 아키코와 도망생활을 하는 과거 전쟁시기 하마다의 다른 이름 스기우라...

하마다와 스기우라를 오가며 전시 도망생활의 이야기와 심리상태 그리고 현재 대학의 직원으로 생활하는 하마다의 이야기와 심리상태가 그려진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발각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징병기피가 이유가 있는 당당한 판단이었는지에 대한 불확신에서 오는 죄책감, 온통 군대이야기와 전쟁이야기로 도배되었던 전쟁 당시와 직후 그리고 전쟁을 비호하는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징병기피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매국행위나 부정의한 범죄행위로 비춰질 것이라는 자기비판적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스기우라와 하마다...

전쟁시 징병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온갖 고초를 겪었던 기억으로 징병기피하여 편하게 생활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하마다에게 서무과장 자리를 빼겼다고 생각하며 억울해 하는 니시 마사오.

사람들의 이야기와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의심하는 하마다의 모습에서 감추는게 있는 삶의 긴장감과 불안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조릿대 베개라는게 이런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푹신하고 맘 놓고 쉴 수 있는 솜이 가득 든 베개가 아닌 산과 들에 대중없이 흩어져 있는 조릿대풀로 만든 배게라는 것은 정처없이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아무 풀이나 뜯어서 배게 삼아 발닫는 곳에서 잔다는... 맘 편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없는 불편한 잠... 그것이 주인공 하마다의 삶이지 않았을까...

국가와 사회와 체제에 한번 반항한 자는 마지막까지 그 반항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영원히 위험한 여행의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이 구절에서 하마다가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침략 전쟁, 명분 없는 전쟁, 살인 등의 행위에 반대해 스스로 징병의무를 기피한 주인공 한마디로 양심적 징병 기피인데... 과연 우리나라가 정당한 명분 없이 침략 전쟁을 벌이고 젊은이들을 강제 징병한다면 나는 내 자식을 그 전쟁에 참전시킬 수 있는가? 그러지 못할거 같다.

현재도 러시아의 침략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물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죽어나가는 젊은이들은 권력을 쥐고 흔드는 권력자의 야욕의 희생물이 아니라고 누가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 특히 하마다는 대동아공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기적 망상이 만들어낸 추악한 침략 전쟁을 반대해 징병을 기피했고 이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용납치 못하는 우익화된 일본사회에서 주인공은 영원한 범죄자, 매국노로 손가락질 받고 자기 스스로도 정당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쫒기는 삶을 사는 심리적 도망자의 삶, 조릿대 배게로 상징되는 삶, 불안과 불안이라는 지옥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야! 진짜 소설이라는게 이런거구나 하는걸 감탄하면서 읽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두 이름의 한 사람인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한줌의 어색함도 없이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 속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일체되어 읽은 최고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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