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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독 꼬마 독 사세요! 사계절 그림책
김정희 지음, 밤코 그림 / 사계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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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정말 놀라운 장르다. 글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글이 된다. 특히 이 그림책 독독 꼬마독은 경쾌하면서도 발랄하다.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즐겁다.

상업적이라는 말이 예술과 결합되면, 특히 어린이 책과 결합되면 사람들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그림과 타이포그래피는 수준 높은 팝아트를 보여주는 것 같다. 다양한 서체가 이미지와 결합하여 경쾌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별다른 메시지 없이 그 자체로 즐거운 언어 유희를 보여준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는 유아나 초등 저학년의 어린이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종합 예술로서 이 책은 손색이 없다. 책이 풍기는 특유의 권위가 아니라 유쾌함과 익살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재미가 가득하고 웃기는 책이다. 이러한 책들을 보고 자랄 수 있는 세대들이 진심으로 부러운 이유다. 책이 뭐 별거야? 무엇보다 책은 재미있는 거잖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방귀를 뀌는 꼬마독의 뿡 소리에 자지러지고 호랑이가 얼씨구 절씨구 꼬리를 흔들며 춤을 출 때 함께 몸을 흔든다. 글씨가 춤을 추는 듯하면서 그림과 어우러져 특유의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놀랍다. 글쓴이와 그린이가 따로인 그림책인데 어떻게 이렇게 절묘한 그림책을 만들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두 작가의 협업이 빛을 발한다.

밤코 작가는 특유의 그림 스타일로 본인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작가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 이 책을 사세요. 어린이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할 책이랍니다. 다함께 독독 꼬마독을 외치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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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Dear 그림책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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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읽고 너무 무서웠다. 이 그림책이 암시하는 의미들을 추론하기 전에 삽화가 너무 무서웠다고 해야겠다. 한때는 뚜렷했고 모든 사람이 좋아한 얼굴은 책의 어디에도 없다. 모든 얼굴들은 희미하고 모호하며 뚜렷하지 않다. 그때의 뚜렷한 얼굴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아니 처음부터 있기나 했던가.

요즘 거울을 보면 정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왜 이렇게 늙어버렸지? 이게 정말 내 얼굴인가? 이런 속도로 늙다보면 금방 할머니가 되겠구나. 그러나 보다 더 놀랄 때는 바로 무의식중에 누군가에 의해서 찍힌 내 사진을 볼 때이다. 그나마 거울 속의 나는 익숙하기라도 한데 사진 속의 나는 영 낯설 뿐 아니라 심지어 거울보다 못생기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보는 내 얼굴이 이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얼마나 못생기고 뚱뚱한거야.

뚜렷한 얼굴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날렵한 선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의학의 힘을 빌리든 보정의 힘을 빌리든 어떤 게 진짜고 또 어떤 게 가짜인지가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니체는 말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진짜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가면을 하나 더 달라고 말이다. 이제는 가면이 얼굴이고 얼굴이 가면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쩐지 슬프게도 가면들은 저마다의 얼굴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다 똑같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더 많은 가면이 아니라 딱 한 종류만 남은 가면들 투성이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제는 가면에 익숙해질 것이다. 심지어 나에게 가면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남들이 보기에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얼굴이란 나에게 보여지는 시간보다는 남에게 보여지는 시간이 많으니까. 뒤집어 말하면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진짜 얼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진짜 얼굴을 찾는다고해서 행복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구절, 행복한 집은 대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집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행복은 대개 비슷하고 아름다운 것도 대개 비슷하며 사람들은 늘 비슷한 것을 선망한다. 타인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다. 나의 얼굴은 곧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집을 닮았다. 나의 고유성, 개별성은 곧 불행의 이유가 될 것이다. 내 얼굴을 잃어버리고 행복을 찾을 것인가, 내 얼굴을 지키며 불행하게 살 것인가. 오늘도 SNS의 이미지 속에서 헤엄치는 나는 차마 용기 있는 선택을 하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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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의 걷기 클럽 사계절 아동문고 108
김혜정 지음, 김연제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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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어른 독자이긴 하지만 아동이 주인공이거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를 읽을 때 가급적 아동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보려고 하는 편이다. 아동이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것을 다 제쳐두고 이 책을 재미있다고 생각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의 입장에서 유의미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가 작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작가와 독자는 적게는 이십 여년의 시차를 사이에 두고 있고 어린이의 시각에서 일단 어른 작가가 아이의 삶을 그럴듯하게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설령 그럴듯하게 어린이의 삶을 재현한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그저 현실을 재현하기만 한다면 굳이 현실을 놔두고 책을 펼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어른들은 어린이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책은 그러한 가르치고자 하는 욕망, 교훈을 주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만만하지 않은 어린이 독자는 무언가를 가르치려드는 어른 작가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리고는 또 책을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어른이 되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어른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난처한 상황에서 열세 살의 걷기 클럽은 아주 솜씨 좋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열세 살의 모든 고민을 다룰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른이 보기에 아이들이 마음속에 한 가지씩 품고 있을 법한 고민에 주목하고 있으며 섣불리 그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저 워킹 메이트로서 아이들이 가진 고민을 담담하면서도 씩씩하게 풀어갈 뿐이다.

걷기는 이기고 지는 운동이 아니면서도 옆에 있는 사람과 같이 또 따로 할 수도 있는 운동이다. 정해진 구간이 있지만 꼭 완주를 할 필요도 없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 기능으로도 할 수 있는 걷기라는 운동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열려있다. 친한 친구와 헤어진 뒤로 다시는 친구를 사귀지 못할 것 같았던 윤서, 오지랖쟁이 강은, 무리에 끼고 싶지만 어쩐지 잘 되지 않는 혜윤, 살을 빼고 싶은 재희까지 네 명의 친구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걷기 클럽에 가입하여 걷게 된다. 저마다의 속도로 걷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싶지 않을 때는 건너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고민이 드러나고 네 명의 아이들은 서로를 도우며 근심을 헤쳐나간다.

그저 서로의 워킹 메이트가 되어주는 것,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든, 어떤 결론이 나든 옆에서 묵묵히 걸어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쿨한 태도로 저만치에서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어린이에게만 모든 고민을 떠넘기지 않고 또 가르치려는 태도로 어린이의 모든 고민을 해결하려고 들지 않는 책, 고민이 있으면 나가서 같이 걷지 않겠느냐고 다정하게 권유하는 책, 이 책을 읽고 나도 문득 나가서 천천히 걷고 싶어졌다. 누군가 옆에서 함께 걸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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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주 사계절 아동문고 107
이인호 지음, 메 그림 / 사계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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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주가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 그리고 세주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어서. 세주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주눅 들어 있고 자기에게서 행여 나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언제나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꾹꾹 눌러 참는다. 하나뿐인 언니는 귀찮은 잔심부름을 시키기 일쑤고 엄마 아빠는 자식들에 대해 배려할 여유도 없이 이혼의 위기에 몰려있으며 친한 친구 하나 없는 학교에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는 재혁이를 보는 것이 세주의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세주에게 마음 속의 또 다른 세주가 찾아가 말을 건넨다. 다른 세주는 그동안 세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 해야 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을 속삭인다.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알았던 다른 목소리가 사실은 또 다른 나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세주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부터 세주는 황당하면서도 귀찮은 사건에 휘말린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편의점에서 소세지를 훔치게 된 세주, 하필이면 그 모습을 같은 반 수용이가 목격하게 되고 그때부터 세주의 온 신경은 수용이에게 쏠릴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 실수로 수용이의 도시락을 가져가게 되면서 수용이와의 난처한 우정이 시작된다.

살면서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이렇게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21조로 살면 어떨까. 내 마음 속 또 다른 누군가가 있어 어렵거나 고민되는 일이 생길 때 또 다른 나와 의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발한 또 다른 나와 만나 적당히 섞이면 얼마나 사는 게 수월할까. 어떤 세주를 읽으면서 세주가 또다른 세주의 목소리를 들을 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떤 누구가 마음 속에 있지 않은가. 사람이 늘 단일하고 일관적인 성격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누구나 복잡하고 일관적이지 않고 사실은 엉망진창에 가까운 상태로 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는 어떤 세주만큼 어떤 수용이도, 어떤 채아도, 어떤 엄마도, 어떤 언니도 볼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세주를 온 세상의 하나뿐인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인물을 얄팍하게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알고 보니 걔도 힘들다더라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떤 누군가의 목소리를 품고 있는 복잡한 존재하는 것.

세주가 완벽히 착한 아이가 아닌 것처럼 세주를 둘러싼 수용이나 채아도 완벽히 못된 아이들은 아니다.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자꾸 엄마 노릇을 하려는 이모와 사는 수용이, 그저 하는 애 같지만 생각지 못한 세주의 장점을 발견해주는 채아. 이 모두는 불완전하고 복잡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세상의 수많은 어떤 누구들에게 책은 말하는 듯하다. 우리 모두는 비록 불완전 하지만 모두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주인공이라고. 소중한 어떤 누구들과 그리고 소중한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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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이 되면 Dear 그림책
황인찬 지음, 서수연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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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사는 것이 괴로울 때,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 생이 두 번째 생이라면 사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처음이어서 늘 고단한 것만 같고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텐데 하면서 불안과 후회로 일기를 가득 채우던 때 이 책, 백 살이 되면을 만났다. 책을 읽고 아 그래 이번 생은 두 번째 생은 아니지만 두 번째 생처럼 살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치 백 살을 산 사람처럼,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가뿐하게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면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책은 표지에서부터 굉장히 청신한 느낌을 준다. 말갛고 산뜻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얼굴, 푸릇푸릇한 식물들 사이로 두 볼이 붉게 상기된 사람은 어떻게 보아도 백 살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빙그레 웃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이 사람은 어떻게 백 살을 살게 된 것일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은 백 살이 되면 좋겠다고,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고, 엄마가 불러도, 아빠가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구나 사는 게 힘들 때 한 번쯤 해볼 만한 상상이 아닌가. 침대 밖은 위험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으면 좋겠고 어딘가 특히 학교나 일터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 그리하여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침내는 거대한 나무가 되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 이쯤 되면 생에 대한 환멸과 지루함, 고단함과 비루함이 그야말로 거대한 나무가 되어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순간 오래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나무 밑에 와서 고요히 쉰다. 오래 오래 평화로운 잠 속에서 아주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잠은 죽음이 아니다. 백 살의 낮잠을 자고 깨어나도 여전히 인생은 한낮이고 부드러운 오후의 빛 속에서 온 가족이 모여 내 침대를 둘러싸고 있다. 백 년동안 쉬어서 아주 기분이 좋은 나는 웃으면서 다시 시작을 할 수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긍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이 어떻건 무조건 다시 한번 더를 외치는 그 경쾌함, 가뿐함. 어서 어서 백살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다가도 백 살의 낮잠을 자고 나서 다시 산뜻한 마음으로 그래 두 번째 라운드를 시작해보자고 하는 마음. 그리하여 비록 모든 것이 처음이고 단 한번 뿐인 인생이지만 마치 두 번째로 사는 것처럼 조금은 만만하고 가볍게 살 수 있는 그 경쾌한 자세 말이다.

한 편의 시와 수채화같은 삽화가 어우러진 이 그림책은 표지만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에 휴식을 준다. 백 살이 되어도 혹은 백 살이 되지 않아도 아직은 오후의 해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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