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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이 되면 ㅣ Dear 그림책
황인찬 지음, 서수연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평점 :
때때로 사는 것이 괴로울 때,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 생이 두 번째 생이라면 사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처음이어서 늘 고단한 것만 같고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텐데 하면서 불안과 후회로 일기를 가득 채우던 때 이 책, 백 살이 되면을 만났다. 책을 읽고 아 그래 이번 생은 두 번째 생은 아니지만 두 번째 생처럼 살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치 백 살을 산 사람처럼,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가뿐하게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면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책은 표지에서부터 굉장히 청신한 느낌을 준다. 말갛고 산뜻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얼굴, 푸릇푸릇한 식물들 사이로 두 볼이 붉게 상기된 사람은 어떻게 보아도 백 살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빙그레 웃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이 사람은 어떻게 백 살을 살게 된 것일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은 백 살이 되면 좋겠다고,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고, 엄마가 불러도, 아빠가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구나 사는 게 힘들 때 한 번쯤 해볼 만한 상상이 아닌가. 침대 밖은 위험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으면 좋겠고 어딘가 특히 학교나 일터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 그리하여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침내는 거대한 나무가 되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 이쯤 되면 생에 대한 환멸과 지루함, 고단함과 비루함이 그야말로 거대한 나무가 되어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순간 오래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나무 밑에 와서 고요히 쉰다. 오래 오래 평화로운 잠 속에서 아주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잠은 죽음이 아니다. 백 살의 낮잠을 자고 깨어나도 여전히 인생은 한낮이고 부드러운 오후의 빛 속에서 온 가족이 모여 내 침대를 둘러싸고 있다. 백 년동안 쉬어서 아주 기분이 좋은 나는 웃으면서 다시 시작을 할 수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긍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이 어떻건 무조건 다시 ‘한번 더’를 외치는 그 경쾌함, 가뿐함. 어서 어서 백살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다가도 백 살의 낮잠을 자고 나서 다시 산뜻한 마음으로 ‘그래 두 번째 라운드를 시작해보자’고 하는 마음. 그리하여 비록 모든 것이 처음이고 단 한번 뿐인 인생이지만 마치 두 번째로 사는 것처럼 조금은 만만하고 가볍게 살 수 있는 그 경쾌한 자세 말이다.
한 편의 시와 수채화같은 삽화가 어우러진 이 그림책은 표지만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에 휴식을 준다. 백 살이 되어도 혹은 백 살이 되지 않아도 아직은 오후의 해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