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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ㅣ Dear 그림책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3년 4월
평점 :
이 그림책을 읽고 너무 무서웠다. 이 그림책이 암시하는 의미들을 추론하기 전에 삽화가 너무 무서웠다고 해야겠다. 한때는 뚜렷했고 모든 사람이 좋아한 얼굴은 책의 어디에도 없다. 모든 얼굴들은 희미하고 모호하며 뚜렷하지 않다. 그때의 뚜렷한 얼굴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아니 처음부터 있기나 했던가.
요즘 거울을 보면 정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왜 이렇게 늙어버렸지? 이게 정말 내 얼굴인가? 이런 속도로 늙다보면 금방 할머니가 되겠구나. 그러나 보다 더 놀랄 때는 바로 무의식중에 누군가에 의해서 찍힌 내 사진을 볼 때이다. 그나마 거울 속의 나는 익숙하기라도 한데 사진 속의 나는 영 낯설 뿐 아니라 심지어 거울보다 못생기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보는 내 얼굴이 이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얼마나 못생기고 뚱뚱한거야.
뚜렷한 얼굴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날렵한 선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의학의 힘을 빌리든 보정의 힘을 빌리든 어떤 게 진짜고 또 어떤 게 가짜인지가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니체는 말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진짜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가면을 하나 더 달라고 말이다. 이제는 가면이 얼굴이고 얼굴이 가면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쩐지 슬프게도 가면들은 저마다의 얼굴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다 똑같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더 많은 가면이 아니라 딱 한 종류만 남은 가면들 투성이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제는 가면에 익숙해질 것이다. 심지어 나에게 가면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남들이 보기에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얼굴이란 나에게 보여지는 시간보다는 남에게 보여지는 시간이 많으니까. 뒤집어 말하면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진짜 얼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진짜 얼굴을 찾는다고해서 행복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구절, 행복한 집은 대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집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행복은 대개 비슷하고 아름다운 것도 대개 비슷하며 사람들은 늘 비슷한 것을 선망한다. 타인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다. 나의 얼굴은 곧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집을 닮았다. 나의 고유성, 개별성은 곧 불행의 이유가 될 것이다. 내 얼굴을 잃어버리고 행복을 찾을 것인가, 내 얼굴을 지키며 불행하게 살 것인가. 오늘도 SNS의 이미지 속에서 헤엄치는 나는 차마 용기 있는 선택을 하지는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