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세 살의 걷기 클럽 ㅣ 사계절 아동문고 108
김혜정 지음, 김연제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평점 :
비록 어른 독자이긴 하지만 아동이 주인공이거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를 읽을 때 가급적 아동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보려고 하는 편이다. 아동이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것을 다 제쳐두고 이 책을 재미있다고 생각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의 입장에서 유의미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가 작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작가와 독자는 적게는 이십 여년의 시차를 사이에 두고 있고 어린이의 시각에서 일단 어른 작가가 아이의 삶을 그럴듯하게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설령 그럴듯하게 어린이의 삶을 재현한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그저 현실을 재현하기만 한다면 굳이 현실을 놔두고 책을 펼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어른들은 어린이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책은 그러한 가르치고자 하는 욕망, 교훈을 주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만만하지 않은 어린이 독자는 무언가를 가르치려드는 어른 작가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리고는 또 책을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어른이 되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어른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난처한 상황에서 ‘열세 살의 걷기 클럽’은 아주 솜씨 좋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열세 살의 모든 고민을 다룰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른이 보기에 아이들이 마음속에 한 가지씩 품고 있을 법한 고민에 주목하고 있으며 섣불리 그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저 워킹 메이트로서 아이들이 가진 고민을 담담하면서도 씩씩하게 풀어갈 뿐이다.
걷기는 이기고 지는 운동이 아니면서도 옆에 있는 사람과 같이 또 따로 할 수도 있는 운동이다. 정해진 구간이 있지만 꼭 완주를 할 필요도 없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 기능으로도 할 수 있는 걷기라는 운동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열려있다. 친한 친구와 헤어진 뒤로 다시는 친구를 사귀지 못할 것 같았던 윤서, 오지랖쟁이 강은, 무리에 끼고 싶지만 어쩐지 잘 되지 않는 혜윤, 살을 빼고 싶은 재희까지 네 명의 친구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걷기 클럽에 가입하여 걷게 된다. 저마다의 속도로 걷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싶지 않을 때는 건너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고민이 드러나고 네 명의 아이들은 서로를 도우며 근심을 헤쳐나간다.
그저 서로의 워킹 메이트가 되어주는 것,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든, 어떤 결론이 나든 옆에서 묵묵히 걸어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쿨한 태도로 저만치에서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어린이에게만 모든 고민을 떠넘기지 않고 또 가르치려는 태도로 어린이의 모든 고민을 해결하려고 들지 않는 책, 고민이 있으면 나가서 같이 걷지 않겠느냐고 다정하게 권유하는 책, 이 책을 읽고 나도 문득 나가서 천천히 걷고 싶어졌다. 누군가 옆에서 함께 걸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