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면 뭐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재미가 없다. 그러니까 가령 시세보다 싸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 하더라도 자신이 이건 그래도 값이 약간 비싼걸‘ 하고 생각한 다면 그건 당연히 비싼 것이다. 그래서 깊이 고민한 끝에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데도, 어느 날 그 레코드가 팔려서 레코드 진열대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것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로 서운했다. 마치 오랫동안 동경하고 있던 여성이 나보 다 더 변변치 못한 남자와 갑자기 결혼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P.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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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서 무말랭이를 한 시간쯤 물에 불렸다가, 참기름으로 볶고, 거기에 여덟 조각으로 자른 지짐 두부를 넣고, 육수와 간장, 설탕과 조미용 술로 맛을 내어 중간불에서 졸였다. 그동안 카세트 테이프로 B.B. 킹의 노래를 들으면서 당근과 무채초무침, 무와 유부를 넣은 된장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도루묵을 구웠다. 이것이 그 날의 저녁 반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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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스컴백‘이라는 말은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들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약간 움찔했다. 뭐, 스컴백?"
‘스컴은 쓰레기란 뜻이니까 문자 그대로 말하면 ‘쓰레기 자루‘라는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까 ‘무가치하고 도덕심이 없는 자들에게 던지는 모멸의 말, 또는 콘돔‘ 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 그렇구나. 나는 무가치하고 도덕심이 없는 놈이란 말이구나. 이전부터 어쩌면 그런 녀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러나 별로 들어보지 못한 이런 새로운 말(물론 나에게 그렇다는 얘기다)로 욕을 얻어먹으면 그다지 나쁜 느낌이 들진 않는다. 조금 진귀한 곤충을 발견한 것 같은, 혹은 지금까지 구할 수 없었던 야구 카드를 운 좋게 손에 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세간의 지저분한 말, 황폐한 영혼을 채집하고 싶으면 도시에서 차창을 내리고 차를 운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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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를 졸업한 이래 어떤 조직에도 속하는 일 없이 혼 자서 꾸준히 살아왔지만, 그 20여 년 동안에 몸으로 터득한 사 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개인과 조직이 싸움을 하면 틀림없 이 조직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물론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결론 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이 조직에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어수룩하지 않다. 분명히 일시적으로는 개인이 조직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조직이 승리를 거두고야 만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 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관철하기 위해 인간은 가능한 한 신체를 건강하 게 유지해두는 것이 좋다고(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낫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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