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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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자였나 기억은 안 나는데 이 작품이 지나치게 공식에 딱 맞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에 정이 안간다고 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참 주관적인 평가일세,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간다. 이 영화 진짜 군더더기가 없더라구. 신인 감독들이 응당 자기 작품에 폭 빠져서 하기 쉬운 오류들을 푱푱 건너 뛰고 이렇게 할 말만 딱딱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건 가슴으로 만드는 첫 작품이라기 보단 머리로 깎아낸 첫 작품이다 싶은 것이 정말 좀 얄밉다 싶더라ㅋㅋ


그러나 이 정도로 만드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초반 20분 정도 지나니까 딸과 손자가 찾아오고 이 남자는 당연하게 이들을 싫어한다. 중반쯤 되니까 이들에게 가족의 정 같은 것이 살아나면서 동시에 그들의 평화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어 갈등이 증폭된다. 또 좀 지나가면 최고로 위험한 순간이 오고 그러면서 극이 진지해진다. 마지막 부분에 유쾌하게 해결되면서 끝. 그러니까 초반엔 캐릭터를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웃음을 주고 막판에는 확실한 갈등으로 인해 감동과 함께 진지함을 선물하면서 결말 부분에는 '열린 결말' 따위 절대 없이 방점 유쾌하게 딱 찍으면서 엔딩. 군더더기 없이 웃음과 메시지를 주는 데다가 배우들의 매력까지 더해져서 흥행하기에 적절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태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 변신하라고 하지만 자긴 하기 싫다며 변신해봤자 실패하는데 왜 자꾸 하라는지 모르겠다고, 자긴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하고 싶다던 뭐 그런 인터뷰였다. <과속 스캔들>로 그는 정말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렇다.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해도 되는 배우다, 그는. 괜한 변신 안해도 이렇게 사람들 즐겁게 해주고 본인도 흥행으로 인한 인센티브 받고 그러면 되는 거지. 박보영과 왕석현은 정말 너무너무 귀여워서 진짜ㅎㅎ 박보영이 립싱크한 노래들은 솔직히 내 귀에는 별로였지만 그냥 뭐 영화에 큰 해를 끼치는 정도는 아니었다. 글구 박보영이랑 이민호랑 리얼 밀고 싶다ㅎㅎㅎ 왕석현은 귀여운데 영악해 보이지 않아서 그게 좋더라. 그가 엉망인 발음으로 '사람(할아버지) 참 좋더만' 이럴 때 스크린 뚫고 들어가고 싶었지 말입니다ㅋㅋ

사람들도 많이 웃고 나도 많이 웃었다. 마지막 되어 갈 때엔 눈물도 약간 날랑말랑했고. 얄미울 정도로 잘 빠진, 딱 상업영화 자체인 작품이다. 헐리웃에서 리메이크도 한다는데 '쳐부럽'.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진리를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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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 Gran Torin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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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독수리같은 눈을 한 채 아내의 관 앞에 저승사자처럼 서 있는 월터. 그는 자식들에게도 정이 없고 손주들에게도 애정이 없는 고집불통인 노인네다. 죽은 아내의 부탁으로 고해성사를 하고 교회에도 나오라며 신부가 매일 찾아오지만 그에게조차 '공부만 많이 한 27세짜리 숫총각 주제에 누가 누굴 구원하냐'며 쫓아내는 영감탱이다. 그의 이웃들은 '몽'족이 대부분인데 이 늙은이는 아내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집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이사도 안가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이 꼬장꼬장한 노인네는 장총을 지갑처럼 휴대하고 있다.

그랜토리노는 이 노인네의 얼마 없는 재산 중 하나. 72년산 잘빠진 이 자동차를 눈독 들인 '몽'족 갱들이 신고식을 한답시고 옆집의 숫기 없는 소년 하나를 협박, 차를 훔쳐 내라며 종용한다. 소년은 결국 무서운 노인네에게 들키고 이것을 계기로 인종차별주의자에 보수의 극치를 달리는 노인네와 공통점이 전~혀 없는 '몽'족과의 교류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집행자를 옹호하는 성격의 작품에서 좀 더 나아가 화해와 참회를 말하는 작품이다. 솔직히 이스트우드는 보수파에 가까운 인물이며 그의 작품들을 눈여겨 보면 용서의 메시지보다는 응징의 메시지를 더 많이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체인질링>에서도 그랬다. 마지막에 악착같이 사형당하는 살인범의 모습을 보여주는 냉정함에서 이 할부지는 법으로 심판을 하든 총으로 심판을 하든 나쁜 놈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랜 토리노>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역시 이 사람은 또 이런 응징하는 작품을 만들었네, 생각했는데 어머나. 오해였던 거다. 할부지한테 미안해서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타인과의 소통 방법을 모르는 한 노인이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웃에게서 정을 느끼고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속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전에서 소년병을 죽이고 훈장을 탔다는 것에 대해 항상 괴로워하던 노인은 아내의 유언에도 불구,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을 끝까지 거부한다. 그런 그가 속내를 털어놓는 유일한 인물은 자기 차를 훔치려 했던 동양인 소년이다. 노인은 어떤 권위에게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은 거부했으나 자신이 진정 마음을 열었던 소년에게는 진실하게 고백한다. 노인의 고해성사는 결국 마지막의 반전까지 이어지고 그는 진실로 속죄한, 죄 사함을 받은 인간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작품을 동양적 가치에 대해 마음을 여는 백인의 이야기로 읽기도 했다. '몽'족들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침묵하며 누군가에게 고마운 일이 있으면 음식과 꽃을 그의 집 앞에 놓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들의 문화를 혐오하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망말을 서슴치 않던 노인이 나중에는 '내 자식들보다 이 동양인들과 더 잘 통하다니' 하면서 한탄하는 장면은 동양인의 '정' 문화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백인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타인보다 더 그를 외롭게 하는 그의 자식들은 그만의 방식으로 '응징' 당한다. 어쨌든 클린트 할부지는 끝까지 굽히지 않는 것이다. 총질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노인이 아버지가 없는 소년에게 가르치려는 '남자들의 세계'는 험한 욕설을 하면서 애정을 표현하고 연장 쓰는 법을 알려주는 식의 보수적이나 따스하고 바람직하게 마초적인 세계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년은 계속 범죄의 세계로 그를 끌어들이려는 현대적이고 냉정하며 그를 타락하게 하려는 마초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전으로 표현되는 남성 세계의 부정적인 면인 '전쟁'을 거친 노인은 이 소년이 어떻게든 긍정적인 남성 세계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인은 계속 소년에게 '남자다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소년이 누나의 복수를 하겠다며 싸우러 가자고 말했을 때는 그가 지금껏 고수해왔던 '남자다운' 행동을 거부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며 그들의 세계는 온건히 지켜져야 한다는 보수적 세계관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있지만 선함이 공격받을 때 똑같이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우회한 듯하다.

결국 속죄는 속죄대로 이루어지고 숭고한 희생으로 인해 응징은 응징대로 이루어진다. 그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악에는 악으로 갚아줬던 방식들은 끊임없이 희생자들만 재생산하는 백인들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러지 맙시다, 다른 방식으로 갚아줄 수 있으니 - 라고 클린트 할부지는 말하는 듯 하다. 총을 들어도 멋있는 할부지지만 다른 걸 드는 것이 더 멋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아신 것 같다. 이렇게 길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냥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좋다. 영혼이 있는 영화라는 건 바로 이런 거다. 클린트 할부지가 오래 오래 사셔서 계속 나를 울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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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가든
이언 매큐언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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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읽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그의 작품을 사재기했는데 단편집은 좀 지루해서 읽다가 말았고 <암스테르담>은 꽤 흥미로워서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속죄> 전만 해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언 매큐언의 인기 때문에 재발행되었다. 엊그제 친구에게 바람맞아 기분도 우울하고 월급도 좀 남았고 해서 서점에서 책을 세 권 샀다. 사면서도 <시멘트 가든>이 소장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은데 싶었다. 읽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버리면 되니까, 하면서 사버렸다. 어쨌든 도서관에는 없는 책이니 사서 읽는 수밖에.

78년도 작품이라 이언 매큐언의 작품 세계가 완성됐다기보다는 자신의 문학적 토대를 쌓고 모색하고 스타일을 확립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음. 한국 독자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은데 아이들이 죄의식없이 근친상간을 범하는 장면같은 것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근엄함과 윤리적 잣대로 비추어 봤을 때 너무도 불편하기 때문인가보다. 이 작품에서 그런 불편함을 빼면 시체인데ㅋㅋ 어렸을 때 희미하게 죄의식을 느끼긴 했지만 금기를 어긴다는 쾌락을 더 강하게 느꼈던 몇몇 '나쁜 짓거리들'을 생각하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은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또 근친상간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날 법한 일들이고. 무엇보다 나는 이 작품이 성장 소설이 아니어서 좋았다.
흔히 사람들은 아이들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성장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된다는 것을 어른이 되는 것과 동일시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어른 중심적인 사고가 아닐까? 어른들의 내면에는 죽을 때까지 아이가 존재하지만 나이가 들면 철이 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숨기는 방법만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성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다.

잡설은 고만하고 작품 얘기로 들어가보자. 어른들이 질병으로 죽어 버리고 황량한 2층집에는 아이들 네 명만이 남아 있게 된다. 18세의 장녀, 16세의 차남, 그리고 정확히 나이를 알 수는 없는 차녀와 유아기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막내... 아이들은 어머니의 시체를 시멘트를 넣은 상자에 묻은 채 지낸다. 아이들이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금기가 없는 자유에의 쾌락 때문이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함께 외출을 하고 나와 동생만이 집에 남아 있었을 때는 언제 부모님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하면서도 그간 하지 말라는 일들을 즐겁게 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는 사실을.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부모님이 함께 없으면 더 재미있고 신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왜일까. 어른이 없다는 것은 검열 체제가 없다는 것이고 좀 더 아이스럽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니까. 어른들은 아이들은 아이다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어른스러움을 강요할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순진하며 무지하기 때문에 악마적이다. 이 작품의 아이들은 성정체성을 드러내고 몽상에 빠지며 끝없이 자위를 하고 악몽을 꾼다. 성장은, 악몽이니까. 더이상 죄의식없이 즐거울 수는 없는 거다.

이들의 모호한 질서는 그들의 연대에 '질투'를 느끼는 장녀 줄리의 남자친구가 등장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때에 맞춰 지하실에 있었던 시멘트 무덤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프로이트가 살아있었더라면 이 작품을 꽤 흥미로워했을 것이다. 장녀 줄리와 잭이 가족 통제권을 갖기 위해 경쟁하는 부분이라든가 퇴행적인 행동을 보이는 막내 톰의 여장이라든가 하는 것들. 묘사된 것을 보면 꽤 프로이트스러운 설정들이었다. 둘째 잭은 병약해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막내를 질투하고 줄리의 남자친구는 잭을 질투한다. 줄리의 남자친구가 비밀을 발설하게 되는 것은 아버지가 되려고 했던 그의 의도가 좌절되고 만 분노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이들은 또 한 명의 아버지가 생겨서 자신들을 통제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다소 아쉬웠던 것은 사춘기 소년 잭에 대한 성격 묘사는 독특했지만 수나 줄리에 대해서는 별로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언 매큐언도 사춘기 여자아이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복잡한 내면을. 아니면 화자가 남자아이인 잭이기 때문에 줄리의 튼튼하고 긴 다리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죄의식이 없는 근친상간의 장면은 이들이 했던 의미없는 놀이처럼 표현된다. 사춘기라는 시기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는 이언 매큐언.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금지된 것들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의 세계로 쫓아내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2층에서는 누나와 동생의 섹스가 벌어진다. 그것도 남자친구가 자신을 소유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며 놀이이기도 한 섹스다. 지하실에서는 열 받은 남자친구가 망치로 시멘트 무덤을 깨고 있다.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무의식이 의식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그래서 아이들인 것이다. 완벽하게 악마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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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김도훈 감독, 김보경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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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시리 특별할 것 없는 타이틀이다. 서플먼트도 기존 연예프로에서 다 해줬던 거 재탕이어서

스폿의 팬이었다면 이미 다 봤을 법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것도 60분 정도 밖에 안 된다.

다른 서플은 아예 없음. ng 장면이랑 아침프로에서 해줬던 3-40분 정도의 하이라이트 겸 촬영 현장 모습, 기자 시사 장면이 전부다.

화질이야 뭐 dvd 화질이고. 눈 아프더군.

하지만 스폿의 팬이므로 시청률이 낮아 간소하게 간신히 만들었을 법한 dvd라도 내주니 너무너무 감사할 따름. 감독판이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엄청나게 성공한 작품이 아니니 그 정도 해줄리 만무하고..

어쨌든 샀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했던 타이틀이다. 뭐 어떤가. 지진희만 볼 수 있음 무조건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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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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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 바커라면 그 유명한 <헬레이져>의 원작자이자 감독 아닌가. <헬레이져>의 핀헤드는 어렸을 때 포스터의 포스 만으로도 악몽에 시달리게 했던 공포물 캐릭터의 넘버 원. 결국 영화를 보다가 말고 손 못대고 있다가 이번에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개봉에 맞춰 이 책이 발간됐기에 원작 소설이나 함 읽어보자는 마음에 구입을 했다.

스티븐 킹이 호러의 미래라고 했다지만 호러 판타지류의 소설보다는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다. <피의 책>이 총 6권까지 출간된 소설집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엑기스만 뽑아서 들여온 한 권이 전부인데 그래서 그런건지 알 수는 없어도 이 책의 상당 수의 단편들이 나에게는 별 매력이 없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의 원작이 짧은 단편이고 살을 붙여서 장편 영화로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으니 정말 영화를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진작가라는 설정이라든가 여자친구의 존재, 또 마호가니라는 인물이  실제로 도축장에서 일한다는 것 등은 다 영화화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정말 짧디 짧은 단편 소설을 가지고 1시간 30분의 호러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영화 속 사진들도 꽤 매혹적이었고. 물론 원작자 클라이브 바커가 영화와 꽤 관계가 깊은 사람이므로 이 작품의 영화화에 많은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된다. 뛰어난 각색이었다.

클라이브 바커가 재현해 내는 호러 판타지의 세계는 영상으로 보여졌을 때 더 매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킹과 다른 부분이다. 스티븐 킹은 소설로만 봐도 읽는 맛이 있지만 클라이브 바커의 이 작품집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좀 낡고 옛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 영상으로 나타났을 때 더 파괴적인 대목들이 많았다. 별로 재미없게 봤던 <언덕에, 두 도시>같은 작품도 사람들끼리 엉키고 설켜서 큰 덩어리의 도시로 싸움을 하는 장면을 어떤 식으로든 영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그냥 소설로 읽는 것보다 더 충격적일 것이다. 클라이브 바커가 표현해 내는 세계는 이토록 '눈으로 확인하면 더 멋질 법한' 그런 세계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 정도의 작품도 영화화했을 때 더 막강할 법한 단편. 내가 클라이브 바커의 심오한 작품세계나 호러 판타지의 깊은 뜻을 잘 몰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피의 책>은 <헬레이져>의 포스터 속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던 핀헤드 만큼의 포스를 주지는 못했다. 몇몇 부분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그 몇몇 부분 때문은 아닌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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