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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과학으로 검증받은 경이로운 진실
파트리크 스발키에로 지음, 이재정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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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은 어떤 것일까.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이고, 죽은 이를 살리거나 병든 이들을 고쳐주는 등 제자들이 기록한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기적을 접할 수 있다.

사도들을 비롯한 성인들은 기적을 경험하였는데, 경험한 기적은 교회의 검증을 거쳐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인정을 받기까지 까다롭고 신중한 절차가 있기에,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기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용하여 이단의 길로 접어드는 사례도 볼 수 있다.

2년 전 우연히 알게 되었던 그 사례는, 성모님의 눈에서 피가 흐른다거나 입속에서 성체가 피와 살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기적' 책을 읽으며 2년 전 접했던 이 사례의 근황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는데 결국은 이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4년 전 OCN에서 방영되었던 '구해줘'의 마지막 회에 나왔던 교단의 명칭과 비슷하여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적을 올바르게 식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1. 기적과 교회의 가르침은 서로 일치하거나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2. 그 어떤 기적도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3. 기적은 창조 질서를 변화시킨다.

4. 기적은 표징이다.

5. 기적은 인간 고유의 주체성을 없애지 않는다.

6. 기적은 실제로 물질적인 형상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온 표징이다.

책에서 다루는 기적은 발현을 비롯하여 성유물, 토리노의 수의, 성흔, 벽곡, 부패하지 않는 시신, 일반 사람들에게 나타난 기적 등에 대해 서술했다. 알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사례들이 많아 흥미를 이끌었다.

-발현

사람들은 기적의 메달 성당, 라 살레트, 루르드, 퐁맹, 노크, 바뇌, 보랭, 파티마 등과 같이 세상에서 유명한 성모님 발현과 관련된 성지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각 성지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수많은 치유가 일어났었고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루르드나 파티마의 경우처럼 교회에서 인정을 받았더라도 발현 자체를 믿어야 한다는 강요를 받아서는 안 된다. 실제로 초자 연적 놀라운 현상은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이다. 교회에서 공인된 발현의 사례를 보면 성모님께서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목격자들을 통해서 전해 주신 메시지들은 교회가 결정한 신앙 규범의 정식을 확증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_49P

 

-음식을 먹지 않고 사는 현상, 벽곡

벽곡은 현재의 지식수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때로는 벽곡과 단식을 혼동하기도 하는데, 이 둘은 서로 많이 다르다.

벽곡은 음식물에 대한 단식이 정점에 달하고 연장되는 형태인 '종교적 금식'이나 '거룩한 금식'과 가끔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록된 자료들이 부족하고 많은 점에서 의학 지식이 발달되지 않았던 지난 수세기 동안 해 온 종교적 금식과 벽곡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라틴어 '이네디아'(Inedia, 굶음)에서 나온 '벽곡'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보면 오직 성체만 영하면서 완전하고 지속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_70P

 

-유루 현상

유루 현상은 이콘처럼 종교적 형상이나 예수님, 혹은 성인의 형상에서 피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유루 현상은 여러 세기 동안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속임수와 사기가 많이 존재하는 사례라서 의심을 많이 받기도 한다.

때로는 성상이나 이콘 등과 같이 제공된 형상을 분석하여 속임수를 찾아낼 수 있다. 석고나 나무로 만든 성상에서 눈으로는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얇은 주사기로 작은 구멍을 통해 색소가 든 액체를 분사한다거나, 성상의 아래쪽이나 뒤쪽에 은밀히 액체가 담긴 작은 관이나 작은 병을 설치해 액체를 흘려 내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톨릭 교회는 기적적인 유루 현상을 보여 준 여러 사례들을 인정하였다. 성모님의 발현처럼 이 유루 현상에 관해서도 수세기에 걸쳐 이야기들이 수집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 현상의 수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대략 30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_83P

 

-시신이 부패하지 않는 현상

사르벨리오 성인이 선종한 지 54년이 지난 1952년 8월에 마론교 총 대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시신 발굴에서도 참관한 이들이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발굴한 시신을 관찰해 보니 1898년에 성인이 선종한 이후로 변화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시신의 피부와 근육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사르벨리오의 관을 열었을 때 시체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관에서 '거룩하게 느껴지는 향기'가 분명히 풍겨 나왔고,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디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향기가 났다.

그해, 교황청은 사르벨리오의 시복을 결정하였다. 몇 년간 수많은 조사와 과학적 분석을 마친 뒤에 내린 결론은 "주기적으로 관찰된 현상들은 현재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사르벨리오의 중재를 통해 곳곳에서 이루어진 치유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 역시 그의 시복에 영향을 미쳤다.

_112P

 

-치유 기적

귀머거리, 눈먼 이, 나병 환자 등 다양한 중병을 앓는 이들을 치유하는 기적이 많이 행해졌다. 어떤 사람은 치유 기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 번째, 치유된 사람은 실제로 아무런 고통이 없는데 치유를 받았다. 두 번째,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경이로움, 기적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이야기들을 수집하였다. 세 번째, 예수님께서 쫓아낸 악령은 악령이라기보다 정신적인 불안일 뿐이었다.

치유를 기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님께서 치유자의 '은총'을 받아 환자들의 신체 기능을 회복시켰음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에는 놀라운 점이 있다.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치유와 거의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치유 기적들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모두 종교적으로 회심하도록 하였거나 치유받은 사람의 신앙이 더 깊어지도록 했다.

_137P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명확하게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예수님을 어떤 '초인'적인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같은 분이심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 당시 어떤 마술사도 4복음서처럼 기록이 남겨지지 않았다. 4복음서는 살아 있는 사람에 관한 보고서가 아니라, 부활의 빛을 받은 신자들이 작성한 영성 서적이기 때문이다. 부활처럼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기적이나 각각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적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기적은 항상 경이로운 사건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는 '항상 경이로운 것'이라고 대답하려는 경향이 있다. 기적은 종교적인 영역이고 신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기적의 진위 여부는 언제나 예외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비추어 교황이나 주교에게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모든 기적은 신경에서 고백하듯이 비가시적인 세상의 실재를 경계 짓는 베일의 작은 조각을 들어 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종교적 범주에 속한다. 부활을 사실에 근거한 방식으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부활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잘라 내고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인간은 기적 앞에서 토마스 사도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런 토마스 사도에게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신앙인들에게 해당된다. 이는 기적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신앙인이 되라고 초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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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할 수 없는 성채
기 에마뉘엘 카리오 지음, 조연희 옮김, 이영제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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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구마'라는 단어 보다 '굿'이 더 익숙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다른 서적이나 사례에 의하면 서양권에서는 오컬트에 빠져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영화 애나벨에 나오는 워렌 부부같은 퇴마사나 구마 사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를 한국 정서에 맞춰 본다면 대부분 무당을 통해 굿을 하는데, 최근 뉴스에는 오히려 잘못된 행위로 인하여 안타까운 사례들이 간간이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구마가 필요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유혹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책이다. 책에서 말하는 적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행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작은 도시이며, 그 도시 안에 세워진 건물들을 내 삶의 다양한 모습과 연결해보게 한다.

 


농장-성장이 멈춰 버린 직장인; 일은 우리 삶에서 필수적이며, 일이 없다면 사회적 존엄성을 잃게 된다.

제안> 목표 달성을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


거실-가족 간에 생긴 문제; 거실은 가정, 즉 가족들과의 관계를 나타낸다. 세대마다 재연되는 도덕적 연관성도 존재한다.

제안> 분노하고 복수하기보다는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기쁨과 해방, 회복의 진정한 길이 될 것이다.


식당-중독이 이루어지는 곳; 식당은 음식을 먹는 장소다. 식당은 음식과 우리의 관계를 나타내는 한편, 여러 가지 중독의 장소일 수도 있다. 모든 중독이 존재하는 곳, '식당'은 과잉의 장소와 같다. 허울뿐인 덧없는 기쁨은 항상 더 많은 쾌락을 약속하며 우리의 상상을 점령한다.

제안> 우리 지성과 의지의 나약함, 포기 또는 '관계 단절'의 순간들은 위험을 부른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해방 기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침실-휴식의 장소에서 악몽의 장소로; 침실은 사적인 장소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부부만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생활이 공격을 받으면 수면에 지장을 준다. 수면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방해를 받는 것이다.

제안>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떠올리자. 어떠한 경우에도 분노 속에서는 우리를 위협하는 풍랑을 잠재우기 위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믿음만이 우리를 평화로 이끈다.


도서관-가장 중대한 죄악, 교만; 도서관은 지적 양식을 얻는 곳이자 생각과 성찰이 정립되는 곳이다. 우리는 교만에 점령당하여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교만은 중대한 죄악이다.

제안> 소음에서 벗어나 겸허하게 기도드리며 침묵의 시간을 가지자. 단식과 마찬가지로 침묵은 우리를 '비워 내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극장-왜곡된 상상; 극장은 상상과 환상의 장소를 상징한다. 극장이 공격당하면 상상은 왜곡되고 나쁜 이미지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제안> 상상을 치유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상상에 자양분을 주는 행동을 끊어야 한다.


지도의 방-식별을 방해하는 악마; 지도의 방은 우리 성에서 필수적인 곳이다. 삶의 모든 중요한 계획을 이곳에 둔다. 식별 능력도 공격받을 수 있으며 삶의 중요한 선택도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제안> 의심을 멈추고 도움을 청하자. 영적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제는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가 적의 가면을 벗기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도록 도울 것이다.


성당-하느님을 멀리하고 거스를 때; 성당은 하느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는 본거지다. 영성 생활이 공격을 받으면 기도를 못하게 되며, 신앙생활을 거부하고 싶은 유혹에 휩싸인다.

제안> 악마의 공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묵주 기도가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굳이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음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성채 이론을 통해 외부 공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성채 이론이란 9단계의 기도이자 수련인 영적인 방법이며 이 방법에서 지향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1단계: 상상해 볼 것.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고 평야 한복판에 도시(마을)이 보이며, 그 도시는 까마득히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 가운데 작은 언덕이 있고 그 꼭대기에 견고한 성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2단계: 성벽 위 지평선을 바라본다고 상상해 보자. 감시인이자 파수꾼, 도시를 수호하는 병사라고 생각해 보자.

3단계: 눈앞에 펼쳐진 이 도시를 바라보자. 이곳이 바로 나의 삶이다.

4단계: 하느님의 성을 관상해 보자. 성벽 안 가운데 살아 있는 생명의 샘이 있다. 집과 우리의 영적 영혼이 여기에 있다.

5단계: 적이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6단계: 적에게 승리하기 위해 적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리고 하느님의 성을 향해 돌아간다.

7단계: 기도하라. 하느님의 성을 향해 주님께 기도를 바쳐라. 흠숭 기도를 하며 하느님께 청하라.

8단계: 벌어진 틈 사이로 적이 들어왔다면 다시 기도하라.

9단계: 하느님께 온 마음을 다해 감사의 기도를 드려라.


마지막으로 저자는 누구나 시편 작가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한다.

"나의 힘, 내 산성 내 성채, 나를 구하시는 분, 내 방패, 내가 피신하는 분,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시는 분."(시편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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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마음을 치유하는 법
홍성남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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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자기 계발서와 심리도서 속에서, 따사로운 햇살 아래 여유롭게 차 한잔하며 일상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내음을 풍기는 도서가 출간되었다.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조언을 듣는 것 같아, 벌써 저자 신부님과 내적 친분이 생긴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 금방 훌훌 읽어가다 보면 어느 꼭지에서는 '신부님, 벌써 끝났어요? 좀 더 듣고 싶어요!' 하고 홀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내가 상담가도 아닌데 어떻게 나 혼자서 마음을 치유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란 신부님의 걱정과는 달리, 내겐 책의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별도의 멘토나 담당의가 없는 사람에게 '혼자서 마음을 치유하는 법'은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 중 하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멘토나 담당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속 꺼낼 수 없는 이야기는 스스로만이 돌아보고 어루만질 수 있기에 이 책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한 번쯤은 읽고 스스로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책은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시간을 준다. 질문에 답하는 시간 속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외면해왔던 나의 모습과 대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전쟁터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심결에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나의 나약함과 약점이 될 만한 모습을 내 안의 구석에 감춰놓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나의 모든 면과 대면하고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게 유도한다. 내면의 상처는 스스로 인식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외적으로 성장하더라도 내적으로는 그 안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타인과의 상담을 통해 심리적인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부족한 모습도 사랑하고 보듬어야만 근원의 치유가 되고 내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돌보려 할 때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완벽해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완벽해지려고 스스로를 억압하다 보면 마음은 전혀 치유되지 않는다.

완벽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약하고 부족한 자기 모습만 선명히 보일 뿐이다.

우리 인생은 마음이 만드는 파도에 따라 항해하는 쪽배와 비슷하다.

잔잔할 때도 있고, 적당히 출렁거릴 때도 있으며, 큰 파도와 만날 때도 있다. 그러니 항상 잔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파도가 너무 심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파도가 너무 심해져 쪽배가 뒤집어지면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이 마음의 파도는 바로 나 자신이 만든 것이다.

-25p

내 마음속에 상처가 많다면 가장 낮은 단계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

이 낮은 단계의 삶은 마치 어린아이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부모님께 청하듯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충분한 사랑을 받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다.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암벽 등반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도 괜찮고, 몇 번이라도 쉬어도 좋다.

올라가다가 숨이 차면 주변의 경치도 보고, 물도 한잔 마시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조금 늦더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설령 정상에 오르지 못해도 상관없다.

산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니 말이다.

-37p

“자신의 이상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몹시 괴로워한다.

이런 경우 보통은 이렇게 되지 못하도록 하는 근원에 대한 공격성을 보이는데,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러한 상실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인간은 그리스도로 향해서 진화하는 존재”라고 했다.

이처럼 과거를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진화의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방향 전환이란 의미의 ‘회개’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일들 중 잊지 못한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런 작업은 진정으로 과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밑 작업이 될 것이다.

-54p

이상이 높은 만큼 타인에게도 완벽함을 요구하며,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이 내게 약점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방어 기제는 오히려 인간관계의 담을 높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이들 곁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라도 나의 실수나 점을 보일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의 허물이나 약점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 인간미가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약간은 비정상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타인에게도 더 이상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나, 인간관계에서 유연함을 약간만 발휘해도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면 상대방도 내가 저지른 실수나 허물을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67p

외로움의 늪에 마냥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이를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나를 이해해 주는 타인과 어울리는 과정부터 시작하며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찾도록 해 보자.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 건강이 성숙해진 다음부터는 내 마음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피정이 아니더라도 일상 안에서 홀로 조용히 머무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때 휴대폰은 잠시 꺼 두도록 한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왜 그런 것인지 적어 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외로움을 잘 다루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자기 이해와 돌봄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면 좋겠다.

-88p

상담을 하다 보면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를 이야기하며 우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런 현상에 대해 “모든 성인의 삶 안에는 어린아이가 한 명 숨어 있다.

이 아이는 영원한 어린이로 남아 있다.

늘 무언가가 되어 가고 있으나 결코 완성되지 않고, 끝없는 보살핌과 관심을 요구한다.

이 내면의 어린아이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 의미 있는 생명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받았던 상처와 기억이

성인이 된 지금도 자꾸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떨쳐 버리고 과거의 불우한 기억과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상처 부위에 흙을 문질러 더 악화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내재아는 회피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따라 붙는다.

-95p

남을 돕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기에 행복해 보일 수밖에 없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걱정에 쫓기면서 사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그리스 철학자 데모스테네스는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큰 행복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번쯤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말이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기꺼이 남을 돕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가운데 좋은 지인을 많이 사귈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내 인생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22p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자신을 존중하는 의미로 자기 주변에 그어 놓은 확고한 행동 기준이다.

어떤 식이든 타인이 폭력을 행사한다면 확실하게 싫다는 의사 표시를 하고,

내가 존중받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하려고 공격적 통제 방식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런 식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주어야 한다.

선 긋기는 건강한 삶을 위해, 또 내가 진정한 나로서 존중받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특히 선을 긋는다는 것은 나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타인과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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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는 한 줄 가톨릭 : YOUCAT 달력 (스프링)
YOUCAT 재단 지음, 김선태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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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시작했던 교리교사 활동을 하던 중, 한 선생님을 통해 YOUCAT 프렌즈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청년 교리서 YOUCAT을 좀 더 쉬운 설명으로 풀어, 사진과 그래픽을 추가하여 만들었고 글만 읽기에는 지루한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쉽고 주일 교리 시간 때 활용하기에도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1월에 가톨릭 출판사에서 YOUCAT 만년 교리 달력을 내놓았습니다. YOUCAT, YOUCAT 프렌즈, 가톨릭 사회 교리서 DOCAT의 내용 중 핵심적인 교리 내용만 추려 하루에 하나씩, 질의응답식의 교리를 익힐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교리내용 하나씩이기에, 자리에 앉아 글자가 빼곡한 교리서를 읽기 지루해 하는 아이들도 교리에 접근하기 용이하며, 내용이 어렵지 않아 높은 이해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신학기 주일학교의 개학 후 교리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매 주일 교리 시간마다 YOUCAT의 교리 질문을 이용해 주일학교 아이들과도 나눠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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