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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평범한 일상만이 존재하던 『찌니주의보』의 배경 수평마을. 누군가는 밭을 매고, 누군가는 반찬을 만들고, 누군가는 마을회관에 모여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오래 반복된 풍경 속으로 서울에서 내려온 두 젊은 여자인 혜진과 성진, 즉 찌니들이 들어온다. 마을은 술렁인다. 그러나 이 소설의 관심은 갈등 그 자체보다, 갈등 이후에도 사람들이 어떻게 같은 마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가에 머문다.
인간은 낯선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고, 경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두려운 것을 멀리 밀어내려 한다. 수평마을 사람들이 찌니들을 대하는 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따뜻하게 음식을 나누고 이름을 불러주던 손길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다. 그들의 태도는 분명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정지아는 그 장면에서 누구 하나를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대개 악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편견 자체보다도 편견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시간이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익숙하게 믿어온 세계를 단숨에 바꾸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질서와 가치관은 낯선 존재를 만나는 순간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곧 이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해에는 용기보다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들려주는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계절이 바뀌듯 조금씩 스며들고, 어느새 마음 한구석의 굳은살을 부드럽게 만든다. “잘 모리던 것을 워치케 냉큼 받아들이냐.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약이여.”(165쪽)이라는 한마디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정지아의 시선이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만큼만 세상을 이해한다. 그래서 낯선 삶을 만났을 때 서툴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서툶을 부끄러워하며 조금씩 마음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 또한 인간의 모습이다. 작품은 이해를 타고나는 자질보다 살아가는 동안 천천히 익혀가는 마음의 습관으로 바라본다.
『찌니주의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음식이다. 문고리에 걸린 호박전, 이름 없이 놓여 있는 나물 반찬, 함께 둘러앉아 먹는 조기매운탕, 슬그머니 놓여 있는 장조림과 전복장. 한국인의 밥상은 오래전부터 사랑과 사과를 같은 그릇에 담아왔다.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을 한 그릇 더 떠주고, 걱정된다는 말을 삼키는 대신 반찬을 챙겨준다. 수평마을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미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마음은 음식이 되어 대문 앞에 걸리고, 그 밥상 위에서 조금씩 관계가 회복된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한솥밥을 먹는 사람을 뜻한다.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라도 같은 밥을 나누는 순간 사람은 식구가 된다. 그래서 수평마을의 밥상은 허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를 삶 안으로 들이는 의식처럼 읽힌다. 말보다 먼저 밥을 건네는 사람들, 용서보다 먼저 숟가락을 놓아주는 사람들. 정지아는 한 끼의 식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리’라는 이름을 천천히 만들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에는 저마다 다른 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오랜 세월 한곳을 지키며 살아왔고, 누군가는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렸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숨긴 채 여러 번 터전을 옮겨야 했다. 서로의 사연은 닮지 않았지만, 외로움과 두려움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서로를 알아본다. 작품은 성소수자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읽는 동안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존재라는 사실이다. 세대가 달라도,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만난다. 인간은 타인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상처의 결은 알아볼 수 있다. 결국 다름 앞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얼마나 빨리 이해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곁에 남아 있었는가 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평마을’이라는 이름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읽힌다. 수평은 모두가 같은 모습이 되는 상태가 아니다. 각자의 삶을 그대로 지닌 채 서로를 위아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관계의 높이다. 누구는 먼저 이해하고 누구는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속도로 마음을 움직이며 같은 자리로 다가가는 풍경. 공동체란 서로 다른 삶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려 애쓰는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상대를 바꾸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는 동안, 낯선 사람은 조금씩 이웃이 되고 이웃은 어느새 서로의 삶을 기대어 사는 사람이 된다.
정지아는 이번에도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인간 안의 편견과 고집, 무지를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조용히 음식을 들고 찾아오고, 누군가는 먼저 등을 쓸어주며, 누군가는 가장 미워했던 이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민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선언보다 그런 사소한 마음들이라는 사실을, 『찌니주의보』는 전라도 사투리처럼 구수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오래 들려준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서로를 닮아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공동체가 유지된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낯선 사람이 이웃이 되는 데에는 특별한 계기보다 오래 함께한 시간과 작은 마음들이 필요하다. 한 끼의 밥을 나누고, 서툰 사과를 건네고, 이해하지 못했던 존재를 천천히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달라진다. 『찌니주의보』는 그렇게 서로 다른 삶들이 한 마을 안에서 부딪히고 어울리며,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인간의 다정함을 발견하는 독자, 세대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독자, 타인을 이해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소설은 깊은 울림을 건넬 것이다. 또한 피를 나눈 관계만이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같은 밥을 나누는 순간 서로의 삶에 들어설 수 있다는 따뜻한 감각을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정지아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주 조금 움직이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우리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유를 조용히 보여준다.
✏️도서출판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