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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7월
평점 :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하루는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이름도 모르던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창밖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무심히 지나치던 계절의 변화가 문득 반갑다. 앞으로 찾아올 24절기가 괜히 궁금해지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기다리게 된다. 책 한 권을 펼쳤다가 또 다른 책을 만나고, 우연히 들어간 골목이 다음 계절에도 다시 찾고 싶은 장소가 된다. 하루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마음이 머무는 곳은 조금씩 늘어난다.
미우라 시온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그런 마음들을 모아놓은 에세이다. 식물과 새, 책과 만화, 여행과 영화, 고양이와 사람.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이 더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시선을 더 오래 두게 된다. 작가는 세상을 대단한 의미로 포장하지 않고,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시간을 기꺼이 들려준다. 엉뚱할 만큼 솔직하고, 우스울 만큼 다정하다.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좋아한다’는 말은 취향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세상과 가까워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곁에 있는 존재들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마음. 미우라 시온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새롭게 얻는 일이다. 식물을 아끼게 되면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 새를 바라보게 되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많아진다. 책을 가까이하면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기다리고, 계절에 맞는 풍경을 반기는 일도 결국 같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새 하루를 붙잡아 둔다. 관심은 시선을 바꾸고, 시선은 삶의 반경을 넓힌다. 마음을 내어주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씩 넓어진다. 풍요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더 많은 것들과 연결되는 데서 시작된다.
그 연결은 특별한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같은 여름을 보내도 누군가는 더위만 기억하고, 누군가는 슬그머니 불어오는 바람을 기억한다. 어떤 날은 매미 소리가 계절을 알려주고, 어떤 날은 느즈막히 일어난 아침 이마에 내려앉는 햇살이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듣고 싶은 음악이 마침 흘러나오고, 횡단보도에 도착한 순간 신호가 바뀌는 작은 우연들도 있다. 세상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기꺼이 발견하는 감각에 숨어 있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사람은 거대한 행복부터 찾기 시작한다. 언젠가 모든 것이 괜찮아질 날,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미래. 하지만 그런 날들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을 버티게 하는 것은 훨씬 작고 평범한 것들이다. 제철 과일의 맛을 기다리는 일. 돌아올 사람을 위해 저녁밥을 준비하는 일. 삼각김밥 같은 몸매와 고소하고 뽀송한 냄새를 겸비한 고양이의 온기를 느끼는 일. 겨울의 시리게 푸른 하늘, 가을의 낙엽으로 만들어보는 책갈피, 짝꿍 몰래 슬그머니 주워 모아보는 도토리와 알밤들. 하루 끝에 마시는 시원한 탄산수 한 잔. 오래 아껴 읽는 책 한 권. 삶은 이런 작은 애착들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오래 다정하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더 많이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권하는, 그리고 더 많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세상을 향해 시선을 내어주는 일이 결국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미우라 시온은 자신의 일상으로 증명한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하루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게 달라진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어쩌지.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마음이 머무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세상은 넓어지고,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어제와 같은 풍경 속에서 새로운 계절을 발견하고, 스쳐 지나가던 존재 하나에 오래 시선을 두게 되는 순간 하루는 조금 다른 온도를 가진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그런 변화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둔 책이다. 『마호로 역』 시리즈를 비롯한 작품들에서 보여준 미우라 시온 특유의 따뜻하고 유쾌한 문장 감각은 이번 에세이에서 일상의 가장 작은 부분을 포착하는 힘으로 한층 깊어진다. 평범한 하루 속 숨은 기쁨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식물과 동물, 계절과 책처럼 오래 곁에 둘 존재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또한 삶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 거창한 위로보다 오늘을 살아갈 작은 이유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도 잘 어울린다. 좋아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세계는 넓어진다는 사실을, 미우라 시온은 자신만의 다정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도서출판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