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로모프 1 대산세계문학총서 10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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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차로프의 몇 편 되지않는 작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라는 <오블로모프>를 읽었다. 곤차로프라는 작가의 이름조차 몰랐던 나는 석영중 교수가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에서 먹다가 죽은 남자로 소개한 '오블로모프'에 급 호감을 느끼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석영중 교수는 <오블로모프>는 러시아 요리의 백과사전이랄 만큼의 온갖 요리들과 함께, 한 귀족지식인의 무기력한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했다.

당시 대다수 러시아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곤차로프 역시 중류 계층의 지주 귀족을 주인공으로 등장 시켰다. 이 소설로 인해 허무감에 빠지고 무기력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19세기 러시아 사람을 일컫어 오블로모프 기질(오블로모프시치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곤차로프는 소설에서 느긋한 몽상가 오블로모프와 민첩한 실리적 인물의 전형인 독일계의 슈톨츠를 대조하며 옛 러시아 귀족주의 전통과 함께 막 발달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산업화가 서로 불안하게 공존하는 당시 러시아 사회 상황을 조명한 것이다.

게으르며 무사 태평한 타고난 귀족 오블로모프는 죽음과 같이 잠든 상태에서 그만 깨어나라고 소리치는 슈톨츠에게, '자만심과 우월감으로 가득찬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자신이 더 고상하다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항상 누구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에 사로잡혀 쫓기듯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잠을 자고있는 것은 아니냐, 그들이 오히려 죽은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냐'고 강변한다.

 

누구에게서도 환하고 평온한 시선을 발견할 수가 없어. 모두들 서로에게 어떤 괴롭기 그지없는 근심과 우수라는 전염병을 옮기고 있고 병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어. 진리며 선행도 자신에게나 관대할 뿐 남을 위한 것들은 전혀 없고, 동료의 성공에 얼굴이 백짓장으로 변해버린 단 말일세. 어떤 이는 근심을 하지. 내일 관청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일이 오 년째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반대파가 치고 올라오고 있어. 그러니 오 년 내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야. 어떻게 해서든지 반대파를 막고 공격에 대비해서 자신의 행복이라는 건물을 쌓아올리고야 말겠다는 야심. 오 년 동안을 하루같이 왔다갔다하고, 사무실에 앉아서 한숨만 내쉰다네. 바로 이것이 삶의 이상이자 목표란 말일세! 또 어떤 사람은, 매일 관청에 출근해서 오후 5시까지 근무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왜 나에겐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네. -285쪽

오블로모프의 이러한 모습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떠오르게 한다. 바틀비는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자발적 의지를 강하게 표하며 어느날 그렇게 죽어간다. 물론 오블로모프의 경우, 어린시절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귀족의식에 의한 '무위'이다. 다른 사람의 수고를 통해서만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귀족'이라는 족속의 생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오블로모프는 바틀비와는 전적으로 다르며, 또한 바로 그렇기때문에 오블로모프의 '무위'는 게으름으로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귀족이나 하인, 농노의 개념은 사라졌지만 자본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오늘날에도 인간 사회의 계층이나 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바틀비는 바로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한편, 귀족적 무위 의식에 허우적거리는 오블로모프는 사랑조차도 자기 스스로 챙길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보여 답답했다. 때문에 오블로모프와 올가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권이 지루했다. 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라니 이보다 더 지루한 이야기가 있을까. 사랑하는 여인 올가와 헤어지게 되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하는 오블로모프이지만, 그녀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절대 그가 죽기 않으리라는 것은 올가도 알고, 나도 알고 오블로모프 그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죽겠다는 그의 말은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고, 자신의 사랑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한 핑계인 것이다.

 

또한 오블로모프는 자기가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주어지는 것인지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로 차려지는데로 무작정 받아 먹고 마시며 잠만 잔다. 심하게 비약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은 막사의 돼지를 떠오르게 하는데 그것이 오블로모프 기질, 즉 19세기 러시아 귀족의 모습이라니 곤차로프가 귀족에게 어떤 억하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어쨌든 오블로모프는 농노의 피를 받아마시며 무위도식하는 러시아 귀족의 대표격으로, 자신의 시중을 받는 자하르와 아가피아 마트베이브나와 그밖의 3백명이나 되는 농노들의 맹목적 충성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궁금한 것은 자하르와 아가피아 마트베이브나 같은 충성심을 바치는 쪽 인간들의 심리인데, 그들의 노예근성이 내심 놀라웠던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본시 누구에겐가, 혹은 무엇에겐가 충성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약한 것은 않을까 하는 생각하는 한편,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숙명이었다 라고 여겨진다. 귀족계급은 조상대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농노들의 충성으로 살아온 이상, 하얀얼굴에 부드러운 손, 여린 심성의 귀족 기질을 후손대대로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말이다. 결국 귀족이란 족속은 스스로 살아갈 방도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멸족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정력적이고 활동적인 슈톨츠는 미사여구로 노동을 예찬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며 부지런한 삶을 예찬하지만 그의 목적은 부의 축적에 있다. 그런만큼 그는 계산적이고 노련한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슈톨츠의 이런 약삭빠른 모습 때문에 오히려 인간성과 미덕을 갖춘 인물로 그려지는 오블로모프의 '무위'가 더 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순간도 있었으니, 이는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떻든 나 역시도 할 수만 있다면 되도록 활동이나 노동을 줄이고, 정신적인 활동에 더 많은 중점을 둔 생을 살고싶은 것이 사실이니까. 다만, 다른 사람을 나의 필요를 위해 이용하지는 않아야 겠지만 말이다.

오블로모프의 삶의 방식을 돼지의 그것이라고 비하하는 심정과 함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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