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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몰입도 97%
기대가 컸고 실망은 없었다. 다만 그 기대를 다 채우진 못한 듯.
작가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아니 오히려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에 어울리는 소설 작법을 보여 준다. 기존 텍스트의 빈 곳을 헤집고 들어가거나, 비틀거나 조각내고 그것들을 다시 이어 붙여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 마치 '생각의 탄생'에 나오는 생각 도구들이나 아이디어 발상법에 관한 책을 부단히 연구하여 실행에 옮긴 것 같은 소설이다. 그리고 그 솜씨는 다행히 워크샵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훌륭한 디제이가 만든 리믹스 곡이나 메시업을 듣는 것 같은 재미를 읽는 이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역시 소설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 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의 재미가, 그리고 결국은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믹스 곡보다는 원곡을 더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굳이 이 작가를 나름의 분류법에 넣는다면 박민규나 김영하 혹은 천명관 같은 작가가 아니라 김중혁 같은 작가가 아닌가 하는, 가슴 혹은 우주의 메시지를 받아서 쓰는 작가가 아니라 머리로 치밀하게 생각하고 계산해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하나마나한 생각을 해 봤다. 결국 자신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경영학을 배우고 뒤늦게 문학의 길로 뛰어든 동갑내기 작가의 뒷 얘기가 혹은 앞으로의 얘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