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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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80% 

오랜만의 김훈의 소설이어서 무척 반가웠으나 그 기쁨도 잠시. 뭐랄까 이 기분은...몇년 만에 만나 뵈는 친척 어르신처럼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느낌. 그의 문체는 여전히 아름답고 묵직하고 울림이 있고 힘이 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거리감. 주인공이 김민수 중위를 만났을 때 느끼는 그 '밀쳐내는 느낌'. 그런 느낌을 소설을 읽으며 받다니... 

문득 이 책이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스스로 산천을 떠돌며 건져올린 문장들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이 매달 그려내는 세밀화처럼 그가 바라본 세상, 산과 들을 그려낸 문장=그림들의 모음/화집이나 노래들의 모음/앨범에 가깝지 않을까. 닿을 수 없는 것들, 그려낼 수 없는 것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다가서려는 혹은 다가서려 하는 것들을 그리려는...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작업... 거듭되는 문장들. 같은 의미들. 쌓이는 덧없음....

'사랑'이나 '희망' 같은 말들을 내뱉을 때 그것이 오히려 그 부재와 결핍을 드러내는 것 같아 쓰지 못했다는 작가의 말이 모든 걸 말해 준다. 이 책이 한 권의 화집, 혹은 한 장의 앨범이라면 나는 그 중 챕터 25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등골이 찌릿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곡 같은.. 그 한 장만 보면, 혹은 그 한 곡만 들으면 전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챕터. 스스로 나무가 되고 싶은 작가의 속내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칼의 노래'를 읽고 나서는 뚜벅뚜벅 문장들이 걸어나오는 듯,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어졌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글자를 채우는 것이 오히려 무언가를 자꾸 지우는 듯한, 놓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래서야.... 당분간 리뷰를 쓰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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