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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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95% 

읽다가 생각해 보니 표제작인 '내 정원의 붉은 열매'와 '사랑을 믿다'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이미 읽은 단편들 아닌가. 내가 소설을, 그것도 단편을 두 번씩 읽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고, 읽고 나서 만족한 적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   

작가 권여선은 고등학생 때 혼자 좋아하던 똑똑한, 혹은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인, 대학생 선배 누나와 같은 인상이다. 그녀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커다랗고 맑은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다가 가끔 한마디씩 툭 던지곤 했다. 그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이, 사물이 달라져 보인 건 물론이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깊이,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 속, 머리 속에 인상으로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문득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무더기로 모아 놓았던 사진을 순서대로 앨범에 정리하는 것처럼, 과거에 겪은 사건들은 그런 정리의 과정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 아니 그런 정리를 통해 의미를 찾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잘 꽂아 넣은 사진 아래에 한마디씩 적는 그녀의 말들은 그래서 그 장면들을 기막히게 설명해 주고, 사물과 인물에 적확한 평을 내려 준다. 잦은 회상과 플래시백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런 그녀의 평들이 함께 하기 때문일 게다.  

온 책에서 좋은 부분은 다 모아 놓아 분량이 단편소설 한 편을 넉넉히 능가하는 평론가의 평을 보면서, 역시 좋은 소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게 하거나 입을 다물게 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소설은 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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