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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몰입도 90%
어쩌다 보니, 예전에 참 많이 읽었던 중견 작가들의 소설들을 그동안 많이 읽지를 못했다. 요즘 들어서는 왠만하면 찾아서 보려고 노력 하지만, 결국 소설 보다는 일과 관련된 책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걸 보면, 역시 공부도 때가 있듯이 감수성의 자극도 때가 있나 보다.
내게 신경숙 아니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상은 과민성 대장 증상으로 기억되는 신경증 가득한 우울한 여자의 이미지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진부해 보이기 까지 하는 '엄마'를 들고 나왔을 때, 한편으론 그냥 그렇고 그런 우울한 여자가 엄마 얘기하며 눈물 빼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 글을 내놓지는 않았을 거라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손에 들게 된 글은 지하철에서 고개 숙여 읽다가도 자꾸 고개를 쳐들어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하는, 너무 몰입되어 몰입이 방해되는 '나'의 이야기였다.
엄마를 '잃어' 버린 사건 이후, 엄마를 찾으려 노력하는 시간 동안 가족들은 각자 이미 오래 전에 '엄마'와 '아내'를 '잊어' 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엄마 본인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살아 오면서 자기 역시 엄마가 필요한 딸이었다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딸과 아들과 남편과 그리고 엄마 본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역시 아들의 시점에 가장 많이 동감하는 걸 느끼고선, 남편으로서 산 시간 보다는 아들로서 산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그것보단 결국 이 소설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하나마나한 생각도 했다.
전에 '도쿄 타워'를 읽으며, 엄마의 부재를 자기한테 잘 해준 추억으로만 채우고, 그 부재를 아쉬워 하기만 하는 아들의 혹은 남자의 철없음에 철없는 아들의 정신 못 차린 사모곡이라고 혀를 찬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하면 신경숙은 비록 나중으로 갈수록 진부함의 그늘에 자꾸 젖어들려 하지만, 역시 진부한 소재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 내, 읽는 이로 하여금 '나'의 이야기로 공감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마치 숨겨둔 나의 일기장을 펼쳐 보는 기분이 들게 하는...
엄마에게 너란 존재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엄마가 네 앞에서 집을 치울 때였다. ...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엄마를,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그를 바람벽 앞에 재우지 않으려고 나는 벽 쪽에 누워야 잠이 잘 온다,며 자리를 바꿔 눕던 엄마를 향해 가졌던 빛바랜 다짐들. 엄마가 다시 이 도시를 찾아오면 따뜻한 방에서 자게 하겠다던 맹세들.
그는 자신이 청년시절에 꾼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일평생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 게 엄마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미안한 사람은 저예요, 나는 약속을 못 지켰으니까...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았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