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마을 - 제12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박상우 지음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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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75%

그래도 한때는 잘 나가던 작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중견 작가의 신작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예전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나 '독산동 천사의 시' 같은 소설은 왠만한 친구들 책꽂이에는 한 권 정도 꽂혀 있는 책이었는데 말이다.

작가나 소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염려는 이쯤해 두고, 책을 읽으면서는 어쩌면 이렇게 관심이 멀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나름 냉정한 생각이 든 것도 사실. 평론가는 글쓰기의 황홀경이니 오랜만에 보는 소설다운 소설이니 하면서 극찬을 했으나, 내가 보기에는 오래 전 소설을 꺼내 보는 듯한 느낌을 애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새삼스레 재미만을 추구하고 본질보다는 현상을 추구하는 작금의, 21세기라는 현실이 꽤나 못마땅한 듯 하다. 그래서 이 현실을 허구, 인형 놀이, 아바타로 규정하고 있다. 작가가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비롯해 작품들 전반 곳곳에서 드러난다.

'진실의 언어로 쓰인 최초의 책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진실의 언어를 전파하는 전사들까지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 소중한 존재들은 어둠과 그늘에 숨어서 끊임없이 언어를 갈고 닦으며 하나의 단어에 가짜 체제의 실체를 아로새기고, 한 줄의 문장에 삼천 년의 비밀을 담고, 한 단락에 우주의 운행 법칙을 함축하는 비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제2, 제3의 직업 종사자로 자신을 은폐하고 평생을 살아 나간다. 진실의 언어를 전파하기 위해 요리사로 살아가기도 하고, 노동자로 살아가기도 하고,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 녹여서 전달하는 진실의 언어, 그리고 그것들이 조성해 내는 성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되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덧없는 환영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은 허상이요, 시간은 망상이라는 깨달음. '

중음(): 사유(四有)의 하나.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이르며, 이 동안에 다음 삶에서의 과보가 결정된다고 한다. (中有)

어찌보면 작가는 혹은 평론가는 이제 늙은 소설가의 임무는 구도하듯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지금의 이 어지러운 현실은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잠시 머무르는 곳. 그러므로 이 모든 혼란은 그저 찰나의 시간일 뿐 궁극의 시간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소설가의 그런 깨달음은 아직도 그 49일의 중음 속에서 평생을 헤매고 사는 무수히 많은 독자들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갈 뿐이라는 것. 소설 속의 한 구절처럼, 답답하고 막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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