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몰입도 75% (이하 스포일러 가능성 있음)

소설을 읽고 쓰는 리뷰에 내가 반드시 달아 놓는 저 '몰입도'라는 기준이 이번엔 별로 유용하지 않은 듯하다. 이 소설에 대한 몰입도란 잘 읽히는 정도를 정도를 말할 뿐이지, 결코 극중 인물이나 화자, 스토리에 정말 몰입해서 함께 휩쓸려 가는 느낌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최근작들을 별로 읽지 않았지만, 예전의 작품들은 나름대로 의미있게 읽었다는 기억이 있는 작가였기에, 그리고 이제는 나름대로 한국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라는 느낌이 들어 왠지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어 들었다.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80년대생들, 빛나는 20대의 열정을 불태워야 할 그들이 겪는 현실을 파헤치고, 인터넷을 통해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하는 그들의 복잡한 현실 인식을 보여주며, 그래서 작가의 말대로 그런 세대들에게 행복해 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줄 알았다.

성급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한국 소설에 대해 써 온 리뷰 중 혼자서 흥분해서 신랄하게 썼던 '달려라 애비'나 '달콤한 나의 도시' 보다 더더욱 못한 소설이다. 짐짓 잘난 체하면서 흥미로운 온갖 요소들을 다 가져다 버무려 놓은 샐러드지만, 그 속에 정작 먹을 건 없는 잔치일 뿐이다.

조건은 밑바닥인데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잘도 견뎌 나가는 우유부단과 게으름의 상징인 주인공.(작가는 여기서 주인공의 이런 게으름이 결국은 시스템, 시대의 잘못이라고 위안을 주고 싶은 걸까?) 사생아인 자신이 기죽지 않고 커나갈 수 있게 할머니가 빚으로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서 갑자기 쫒겨 나게 되고,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평소 그가 버닝하던 퀴즈방, 그리고 거기서 만난 구원의 여신 같은 지원이라는 존재다. 그보다는 약간 현실적인 여자 빛나와 그보다 훨씬 현실적인 여자인 고시원 옆방 여자의 상처를 안고, 그가 문득 깨달은 바 있어 향한 곳은 알 수 없는 공간인 회사. 거기서 그는 지적 허영의 퀴즈쇼가 아닌 싸움을 위해 길들여진 글래디에이터 같이, 퀴즈를 위해 길들여진 전사, 혹은 아바타가 되어 퀴즈쇼를 벌인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백일몽 같은 회사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하늘에 떠 있는 섬 같은 공간이었고, 그가 다시 기댈 곳은 구원의 여자인 지원밖에 없더라는 이야기. 이 무슨 허접한 변종 트루 스토리에 맥없는 매트릭스인지.

쓰다 보니 내가 너무 '88만원 세대'라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 소설을 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희망을 주고자 한 것은 진짜 현실에 살고 있는 88만원 세대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문제 의식 운운하면서 결국 소재만 80년대생에서 가져왔을 뿐이지, 문제의식은 20년전의 그것과 다름없는, 아니 더욱 후퇴한 것 아니냐는 식의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건 아닌가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근원에 놓여 있는 건, 이 소설이 조선일보에 연재된 소설이라는 사실. 작가는 스스로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주는 고료만 받으면서 매일 글을 쓰면 되는, 회사에 소속된 민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옆방녀 수희와 고시원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론가의 참으로 잔인하고 무책임한 시선, 인식에는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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