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몰입도 90%

브릿팝, 서브 컬쳐, 루저, 아웃사이더, 오타쿠…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들이다.

오래 전 하이 피델리티 OST를 인터넷에서 겨우 다운 받아 한참을 끼고 산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영화 제목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이거 너무 없어 보이는 제목 아닌가. 계속 흘러 나오는 멋진 곡들과 존 쿠삭과 잭 블랙의 나름 귀여운(?)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 영화의 감흥은 주인공 로브의 투덜거림과 철딱서니 없는 모습에서 무너져 내린다. 역시 영상과 활자는 캐릭터의 내면을 얼만큼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

그래 이 녀석, 아니 이 녀석들이야 말로 영국의 루저이며, 진정한 오타쿠인 것이다. 자기들만의 세계. 그 세계가 전부이며 그 세계 밖의 사람은 모두 무시하는 거나, 끊임없이 자기들만의 ‘리스트 5’를 만들며 그 세계를 지켜내려고 하는 것 등은 전형적인 오타쿠의 모습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레코드 샵을 하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투덜거리기만 하고, 실제로는 다른 세계를 부러워하는 자격지심에 넘쳐 나는 전형적인 루저. 그래서 분에 넘치는 여자 친구까지 떠나가게 하고, 그걸 핑계로 과거의 여자들을 찾아 만나는 ‘그게 다 무슨 의미였지?’의 과정을 거치기 까지 한다. 거기다 미국 여가수와 같이 자기 까지…  참, 대단한 찌질이다.

 하지만, 그래도 개과천선의 여지가 보이는 것은 슬슬 세상이 자기 중심이 아니라는 것과 자기가 생각하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기 시작하면서다. 자신들이 구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결국 로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이곳에 몇천만 시간 분량의 녹음된 음악을 갖고 있지만, 지금 로라의 심정을 묘사하는 건 단 1분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네글리제 차림의 파트너와 로맨틱한 저녁 식사를 하며 서서히 타오르는 눈길을 주고받는 내 소년다운 로맨스가 현실적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꿈이라는 것’에 익숙해 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결국에는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느냐 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까지 한다.

 이렇게 철없던 루저가 사람(?)이 되기까지에는 돈 많고, 능력 있고, 사람까지 좋은 로라의 영향이 크다. 스스로는 자기들을 ‘빅에 나오는 톰 행크스처럼 어른 목 속에 갇혀 어른으로 살도록 강요당하는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라고 표현하지만, 로라야 말로 대책 없는 루저를 구원해 주는 동화 속 왕자님 같은 존재다. 어찌 보면 배리가 자기 음악으로 ‘다른 사람을 쫓아 내는 것 보다는 춤추게 하는 것이 훨씬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것도 다 로라의 덕분 아닌가.
 이 책이 20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번역이 되어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찌질이 루저를 받아들여 줄 로라 같은 여자가 현실에 몇이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여기 한국의 찌질이도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영국 노래만 줄줄이 대고 있는 찌질이 라니… 전에 필름2.0의 소개에서 이 책을 보고 낄낄대면서 웃는 사람은 ‘쪼다’일 확률이 높다는 말까지 봤다마는, ‘쪼다’의 내면을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묘사한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어릴 적, FM 라디오를 머리 맡에 두고 열심히 녹음 버튼을 눌렀던 경험.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수없이 일시 정지와 플레이/녹음 버튼을 눌러 본 사람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즐기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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