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하경아 옮김 / 큰나무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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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무관심하거나

이해하려 애쓰다 지치거나 혹은 분노하거나

이해하는 척 하거나

이해받은 척 하거나

결국엔 그저 흐르는 물처럼 고요히 있는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방법들이 아닐까?

나도 내 안에 수많은 내가 있어 어쩔 수 없는데

또 다른 수많은 '나'를 가진 타인을 어찌 감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인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그 외롭고 고독한 강을 어찌 감히 건너려하는가?

그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용서를 구하고 쓸쓸히 웃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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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위한 비밀
폴 콩스탕 지음, 염명순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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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성이고 

                     동시에 여자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이고

                     한때는 어린이였다가

                     또 덧없이 짧은 순간 소녀였다가

                     이제 숙녀가 되었으나

                     그저 늙어가고

                      누군가의 사랑이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딸이며

                      누군가의 아내 혹은 정부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그 무엇인

                      나는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러하기에

                      비밀이 있다.

                      때로

                      혼자임에 슬퍼

                      비밀을 위한 비밀을 만들기도 하고

                      여럿이기에

                      비밀을 간직하며

                      함께임에 기뻐하여

                      비밀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것은 여성,여자인 동시에 인간이며 

                     한 때는 어린아이였다가 소녀였다가 숙녀가 되었으나 늙어가는

                      누군가의 사랑이며 딸, 아내 혹은 정부, 어머니

                      그리고 누군가의 무엇인 사람들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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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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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재즈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마 재즈는 이런 것이리라.

앞뒤를 분간할 수 없고

혼란스러우며

인생이 그러하듯 비온 뒤 거리처럼 혼탁하고 지저분하나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것, 

어딘지 모르게 측은하고 애를 끓이며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리고 때로 빠른 

슬프고 아름다우나 

인간처럼 순백도 암흑도 아닌......

 

이 책은 결코 재즈에 관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마 

재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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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100만년 동안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100만번이나 죽고서도 100만번이나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멋진 호랑이 같은 얼룩고양이였습니다.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고양이를 사랑하고,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임금님이 싫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고양이를 멋진 상자에 넣어
전쟁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어 버렸습니다.
임금님은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고양이를 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왕궁의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는 뱃사람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바다가 싫었습니다.
뱃사람은 세계 곳곳의 바다나 항구에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배에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뱃사람은 물에 젖은 걸레처럼 축 늘어져 버린
고양이를 안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리고, 먼 항구 마을의 공원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는 서커스의 요술쟁이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서커스 따위는 싫었습니다.
요술쟁이는 매일 고양이를 상자 안에 넣고서는 톱으로 두동강을 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남은 고양이를 상자에서 꺼내 보여 주면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요술쟁이가 실수로 고양이를 진짜로 두동강이를 내버렸습니다.
요술쟁이는 두동강이가 되어 버린 고양이를
두 손으로 쳐들고는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죽는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때 그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도둑이 몹시 싫었습니다.
도둑은 개가 있는 집만 찾아서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어느날, 개가 고양이를 물어 뜯어 죽여 버렸습니다.
도둑은 훔친 다이아몬드와 함께 고양이를 안고서
큰소리로 울면서 어둠 속의 마을을 걸어다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 고양이는 혼자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는 할머니가 몹시 싫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고양이를 안고 작은 창문 너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 죽어버렸습니다.
늙어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는
늙어서 죽은 고양이를 안고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뜰의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는 여자 아이가 매우 싫었습니다.
여자 아이는 고양이를 업어 주기도 하고,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 업혀 묶은 띠가 목에 감겨 죽었습니다.
머리가 흔들거리는 고양이를 안고서, 여자 아이는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 그 고양이는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도둑 고양이였던 것입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비로소 자기 자신의 고양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암고양이이건 그 고양이의 짝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선물로 바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찐 쥐를 갖다 바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멋진 호랑이 무늬의 털을 핥아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런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다구. 이제 와서 뭐 새삼스럽게 그래.나 원 참!"
고양이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좋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딱 한 마리, 그 고양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눈부시게 희고도 아름다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을 가지 고양이 옆으로 가서,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단 말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그럴 수도 있지."하며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넌 아직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지?"라고 물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그저 "그렇단다." 라고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좀 화가 났습니다.
고양이는 자기 자신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흰 털을 가진 고양이 앞에서
빙그르르 세 번이나 돌면서 말했습니다.
"난, 서커스의 요술쟁이의 고양이일 때도 있었어."
흰 털을 가진 고양이는 "그래" 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100만 번이나...." 하고 말을 잇다가
"네 옆에 있어도 돼?" 라고 흰털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그렇게 하렴." 하고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 고양이 옆에서만 지냈습니다.
고양이는 더 이상 "난, 100만 번이나...."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 고양이와 많은 아기 고양이를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이윽고 아기 고양이는 점점 자라나 뿔뿔이 어딘가로 가버렸습니다.
"저 놈들도 멋진 도둑 고양이가 되었네요." "정말 그렇군요."
흰털 고양이가 그렁그렁 부드럽게 목소리를 내며 대답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차츰 늙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층 더 부드럽게 "그렁그렁" 목을 울리곤 했습니다.
고양이는 흰털 고양이와 함께 언제까지나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흰 털 고양이는 그 고양이의 옆에서
조용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지나고, 또 밤이 오고, 아침이 오고..
고양이는 100만번이나 울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지나고 아침이 지난 어느 날 한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 고양이 옆에서 조용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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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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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잘생긴 작자는 어떤 인간이길래 처녀작에서 이런 심오하고 난해하며 복잡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는지..
내 사고의 폭은 왜 이리 좁고 얕은 것인지...
 

말하는 것이 두렵다.

낯설거나 낯선 사람 앞에서 나는 무엇을 입으로 쏟아내야 할지, 감각은 마비된 것 처럼 내부에서만 방황할 뿐이다.

그들이 내게 갖고 있는 선입견에 딱 들어맞지도 않는 그렇다고 나를 여과없이 드러내지도 않는, 적당히 평범하며 적당히 적절한 단어를 골라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왜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보통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나는 왜 타인에게 지나치게 소심하며 약간 이상하거나 특이한 사람인가?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어쩌면 가장 불완전할지도 모른다.

언어라는 표현수단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우리는 그 불완전만큼 더욱 불완전해지고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언어'를 잃어버리면 좀 더 완전해 질 수 있을까?


'아담'의 말을 이해할 순 없지만 난 '아담'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아니 모두가 있는 그곳에서 집을 짓고 정원을 산책하고

벽에 기대어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생각하고 울고 슬퍼하고 싶다.
모두가 나를 내버려두는 곳에서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가만히

머물러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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