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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이은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얼마 전 릴케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오래된 집 안에서>라는 제목을 가진 시로 시작되는 책을 읽으며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유명한 릴케의 시라는 선입견에 갇혀 거창하고 심오한 철학을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의 시는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듯했습니다.
생각보다 더 차분했고 조용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상의 이야기 같은데 머릿속에서 쉽게 흘러가지 않았어요.
자꾸만 '이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들더라고요.
매일의 일상을 일기처럼 엮어낸 릴케 시집을 그렇게 끝까지 읽게 되면서, 릴케는 질문을 남기는 시인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릴케.
이번에는 소담출판사에서 나온 릴케의 서간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시 속에서 릴케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가득 남겨두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줄지 궁금했습니다.
릴케에게 편지를 받는 젊은 시인 카푸스가 되어보며,
그가 건넨 문장들 속에서 그 질문들의 방향을 함께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릴케의 단호함은 첫 번째 편지에서부터 느껴집니다.
그는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는 일을 멈추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충고에 기대지 말고, 대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라고요.
왜 글을 쓰는지, 그 이유가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려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라고 권합니다.
이 대목이 꼭 저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요즘 저는 ‘잘 쓰고 있는 걸까’, ‘이 방향이 맞을까’ 같은 마음이 자주 흔들리곤 했거든요.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들 속에서,
남들과 비슷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만의 일상에서 시작하라는 조용한 조언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릴케의 시를 읽으며 느꼈던 그 잔잔함, 오래 남는 그 무언가가
이 편지 속에도 흐르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덟 번째 편지에서 릴케는 고독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고독한 존재이면서도 마치 외롭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하지만 그 고독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고독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릴케는 이야기합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저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흔들렸던 이유도, 고독을 충분히 견디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고 말해주는 릴케.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만의 언어, 자신만이 엮어낼 수 있는 주제를 찾아보라고 조언해 주는 릴케의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우기보다, 왜 쓰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저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온 한 통의 편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