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아이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4
로이스 로리 지음, 강나은 옮김 / 비룡소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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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독일 북부에서 2000년 전 시신인 늪지 미라가 발견되었다. 

이것에 영감을 받아 늪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은 아이가 살았을 1세기 철기시대의 이야기를 진짜 역사와 허구를 매력적으로 결합시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로이스 로리 작가의 최초의 아이.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미라의 모습에 한동안 다음 장을 넘기지 못했다.

이 아이는 왜 여기에 누워 있었을까? 어쩌다 여기에 빠져 이런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아마 작가도 이런 상상으로 시작해 멋진 글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직소 퍼즐이 떠올랐다. 퍼즐 맞추기를 할 때는 모양과 색에서 실마리를 찾아 퍼즐 조각 하나하나를 살피고, 조각들을 맞추어 갈수록 그림 전체가 드러난다. 나는 이 여자아이의 퍼즐을 맞추고 싶었다. 이 아이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에스트릴트.

예쁘게 꾸미고 살면서 건장한 전사들에게 선택받아 결혼하는 것. 그런 여자의 삶이 아닌 강함을 가진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여자아이.

동네에서 꼬마 시절부터 친구였던 파리크. 마른 몸에 부유하지 않은 환경이 파리크를 주눅 들게 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 에스트릴트는 친구로서 연민을 느낀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에스트릴트. 

마을 부자들이 데리고 있는 노예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각을 궁금해한다.



그 여자에게도 딸을 잃고 비통해하는 어머니가 있었을까? 자기 부족 사람들한테로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란 적은 없었을까? 결혼식에서 남편을 바라보면서 이제 나도 자유롭게 존중받으며 살겠구나, 기대했는데 노예 시절과 다름없이 집안일을 해야 하는 걸 알고 좌절하진 않았을까?


에스트릴트의 이런 생각들이 그녀 자신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고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새 전사들이 나서는 순간. 에스트릴트의 시간! 여동생들과 여자 친구들을 위한 시간. 모든 여자의 미래를 위한 시간.

이 시간을 에스트릴트가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왔는지 이야기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왜일까..


"계집아이, 에스트릴트!"


앞에 '계집아이'라는 말이 붙은 걸 보면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 있었던 에스트릴트에게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족에서는 여자는 숭배를 받는다. 결혼식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일깨운다, 여자는 한 남자의 반려자가 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그 남자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존재임을." 


"여자는 올바른 일만 행해야 하고... 부정한 여자는 매질을 당한다."

"계집아이 에스트릴트는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아니 이런.. 에스트릴트가 강함을 존경하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길 원했었던 것이 뭐가 그리 잘못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저렇게 다 같이 모여 여자아이에게 두려움을 주고 윽박을 지르며 잘못되었다고 매장을 할 일인가? 읽으면서 울분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사복이 찢기고 머리가 잘리며 벌거숭이가 되어 늪에 빠져 죽을 운명에 놓인 에스트릴트.

늪으로 끌려가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이 파리크에게 선물했던 리본으로 어둠이라는 선물을 받아 위안이 되었을까? 너무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반전이 일어난다.

그 늪에 빠진 시신이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라면? 

그것을 연구하던 질-로빈슨 교수는 빈데비 늪에서 발견된 미라가 남자아이며 건강 상태가 나빴을 거라 추측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럼 이 남자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우리 에스트릴트는? 

이야기의 뒷장을 읽기 전에 '아니, 어쩌면 혹시?'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렇게 작가님의 의도대로 자연스럽게 그 미라가 파리크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파리크의 이야기로 뒷부분이 채워지는 최초의 아이.


주인공이 에스트릴트이든 파리크이든 마음이 짠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허구 같으면서도 현실 같은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어른인 내가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감정과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것은 또 다를 것이다.


'그때는 저도 알 거야. 그래서 어느 편안한 장소를 찾아가서 날개를 접고 앉아 잠이 든 다음 깨어나지 않을 거야.'


부엉이로 잠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불빛들을 지나 공중으로 훨훨 날아갈 거라는 파리크. 


우리에게 빈데비 아이가 여자 아이든 남자아이든 누구더라도, 그 누구든지 그의 생을 기리고 그 염원했던 삶을 현실의 삶 이후에 꼭 이루었길 바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 덕분일까? 


현실과 허구 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 나는 작가의 의도대로 에스트릴트와 파리크를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먹먹해지고 숙연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부디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는 더 긍정적으로 빈데비 아이가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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