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Blu (리커버)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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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출판사의 24주년 기념 특별 리커버 『냉정과 열정사이』. 냉정과 열정사이 Blu를 읽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Blu는 남자 주인공 쥰세이 이야기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를 먼저 읽고 아오이의 마음에 동화된 후 읽게 된 냉정과 열정사이 Blu의 쥰세이를 만나니 뾰족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쥰세이는 왜 아오이와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고 오해 가득한 상황에서 그녀를 버린 것인가! 냉정한 마음으로 쥰세이를 바라보는데 시작부터 쥰세이는 아오이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는다. 


쥰세이의 시점에서 서술된 냉정과 열정사이 Blu는 남자의 관점에서 봐서 그런지 Rosso처럼 섬세한 표현보다는 딱딱 맞아 떨어지는 어체로 서술되어 있다.

옛 연인 아오이를 잊지 못한 채 새로운 연인 메미와의 생활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쥰세이. 메미에게서 아오이의 모습을 찾으려 하지만 메미는 아오이와는 많이 다른 여성으로 묘사된다. 메미는 쥰세이 옆에서 또 어떤 상처를 받을지 속상함이 밀려온다.


아오이에게는 큰소리 치고 당당했던 쥰세이. 메미에게는 쩔쩔매는 부분도 묘사된다. 메미가 전혀 다른 여성이라기보다는 아오이에게 했던 행동들에 대한 후회 때문에 태도가 바뀐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오이에 대한 잘못이 사라짐이 아니라는 것을.. 쥰세이도 아는 듯하다. 


아오이와 함께 였을때도 친구였던 다카시를 만나 그녀를 오해했던 부분을 알게 된 쥰세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 때문에 일어난 그 괴로운 상황을, 쥰세이는 너무 늦게 알게 된다. 그러면서 밀려오는 뒤늦은 후회. 


다카시는 양쪽에서 둘을 만나면서 서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새 삶의 이면에 숨겨진 과거의 어두움을 봤던 걸까? 그래서 그 둘을 다시 이어준 것일까? 다카시가 아무 말 없었다면.. 아오이도 쥰세이도 힘든 마음과 미련은 있을지라도 각자의 연인들과 함께 또 다른 행복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정말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둘의 오해를 조금 더 빨리 풀어줄 생각은 안 했을까? 괜스레 다카시에게 화풀이를 해본다. 


미련도 남고, 자신이 함부로 한 행동에 후회가 된 쥰세이. 뒤늦은 사죄를 하며 보내는 편지. 그는 답장을 기다렸을까? 그저 내 마음이 편해지고자 그녀에게 이제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편지를 쓴 것은 아닐까.. 아오이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던 나로서는 쥰세이의 행동이 야속하기만 하다.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성큼 다가서지 못하는 쥰세이. 그녀에게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들을 다시 망치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쥰세이의 마음엔 공감이 갔다. 그렇기에 용기가 안 났던 것이겠지. 

그럼에도 그녀가 보고 싶고 그녀가 생각나 가게 된 피렌체 두오모. 그리고 만난 그녀. 


-오지 않을 사람이 온 의미를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아직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남아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었다. 팔 년 따위 십 분이나 다름없다고 오해하고 마는 그런 흥분 속에 빠져 있었다.-


-팔 년 만의 교접을 끝내고, 마치 몇 천 미터를 헤엄친 듯한 기분은 왜일까. 도대체 무엇을 꺼려 하고, 누구의 시선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아오이는 아오이가 아니었다.-


헤어졌던 시간을 단번에 따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기억 속의 그녀는 과거의 그녀이기 때문에.. 그 현실을 깨닫고 혼란스러운 쥰세이. 자신의 잘못도 알기에 위축되어가는 그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에게 아오이는 세월이 흘러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다른 여인 아오이로 보이는, 그러면서 또 다른 오해를 하고 있는 쥰세이. 서로의 오해 속에서 아오이가 다시 떠나겠다고 하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쿨한 척 그녀를 보내주는 쥰세이. 

그녀 역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쥰세이. 이것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 것일까? 그녀의 표정을 조금만 더 관찰했더라면, 그녀의 눈빛과 말투에 더 집중했더라면.. 그 때 그녀와의 감정을 서로 깨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Rosso를 읽었을 때와 다른 점은 떠난 그녀를 보고 나서 쥰세이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결국 냉정이 이겼다는 쥰세이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돌아섰다. 그 때, 마은 한 구석에 작은 열정 하나가 싹을 틔워 쥰세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내가 십 년 전의 기억을 간직하며 두오모에 온 것처럼 그녀도 여기에 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 열정은 그에게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용기를 주었다. 

- 나는 아직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녀를 그녀의 현재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팔 년을 다시 얼어붙게 해서는 안 된다. -


19세기 말에 한 약속을 20세기 시작에 지킨 두 사람. 그래서일까, 마지막 독백은 "새로운 백 년" 이었다. 그들의 새로운 백 년은 어떤 삶이 펼쳐질까.. Rosso에는 없던 또 다른 시작이 열림을 Blu에서 볼 수 있어서 새로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두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너무 멋진 두 소설을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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