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니스트 헤밍웨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하창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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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실 겁없이 시작해 버렸던 것 같다.
단편선이라고 해서 조금 얕봤던 것도 있고, 단편 한작품씩 끊어읽으면 스트레스 없이 읽겠다 싶었다.
근데, 작품이 무려 32편이나 실려있고, 마지막에 실려있는 '노인과 바다'는 단편이라고 표현하기도 뭣한 그런 분량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씩 여유를 갖고 읽으면 부담은 없을 구성인데, 문제는 차례대로 3편의 작품을 읽고나서 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너무 어두운거다. 아니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어둡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뭐 죄다 죽어버리니까... 다음작품에도 또 주요등장인물이 죽나?라는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다. 죽어도 좀 멋있게 죽으면 그나마 위안이 될텐데 이건 뭐 갑자기 허무하게 훅 죽어버리니, 헤밍웨이를 제대로 처음 읽는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하게 됐다.

이 단편집 자체가 정확하게 시기순으로 난열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는 뒤에 배치된 것일수록 최근 것에 속했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인 노인과 바다는 1950년대 작품으로 훅 점프를 한다. 이전 작품까지는 1930년대 작품이다.
다행히, 내 취향적으로도 앞쪽에 배치된 작품들 보다 점점 읽기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허무함이 줄었고,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 스토리도 생겼다.
그리고 확실히 노인과 바다는 이전 작품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다른 작품에 비해 양이 두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는.
뭐랄까 묘사가 생생하다고 할까?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모습과 상황이 꽤 생생하게 그려진다. 심지어 상어가 등장했을 때 같이 절망하고 그랬다 내가.

하지만, 내가 이 단편선에서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닉'이 아닐까 싶다.
꽤 여러편에 단편에서 계속해서 등장하고, 닉의 어린시절이야기에서 부터, 성인이 되고 아버지가 된 닉의 모습까지 정말 여러작품에 등장을 한다. 어찌보면 헤밍웨이의 단편집은 닉이 거의 먹여살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근데,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닉이라는 캐릭터에 헤밍웨이 자신을 투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닉이 겪고있는 상황이나 가지고 있는 생각들, 취미까지도 헤밍웨이 자신의 모습과 너무 비슷하지 않나 하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단편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낚시나 사냥, 복서나 격투기 선수의 등장, 도박등을 이용한 경기조작 등 꽤나 선호하는 소재들이 정해져있는 느낌이다. 이는 작가소개를 읽으면서 더 느끼게 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실제 본인의 경험이나 관심사를 작품에 많이 활용하는 듯한 생각이 든다. 32편이나 되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꽤 자세히 묘사하고, 상황설명이 생생하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그게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외국어가 참 많이 등장한다. 프랑스어에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등번역 자체를 원어를 그대로 발음대로 적어주고 괄호안에 그 의미가 적혀있어서, 번역자가 참 번역하기 힘들었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자후기에 아주 재미있는 말이 적혀있었다.

"끝으로, 각종 유럽어들(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을 주석 하나 달지 않고 사용한 헤밍웨이의 '고약한' 작법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는데..."

주석도 달지 않았다니, 역시나 대단한 헤밍웨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건, 생각보다 헤밍웨이가 어둡고 우울하다는 것. 그래서 자살을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긍정적이지 않은 에너지가 굉장히 강했다. 쉽게 덤볐다가, 완독하고 나니 꽤 큰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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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의 꿈 2017-04-18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은 저랑 감상이 반대네요.
저는 작품만 보면 헤밍웨이가 자살한 게 오히려 충격일 정도였어요.

마시마로 2017-04-18 18:20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구나... 전 왜 그렇게 느꼈을까요...^^;; 뭔가 작품이 이상적이라기보다, 지독하게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였을지도 몰라요..

까치의 꿈 2017-04-18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주목하는 부분이 제각각이라 이렇게 다른 감상이 나와서 재미 있네요.
현실적이라는 느낌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문체가 워낙에 드라이한 데다 할 말만 딱 하고 마는 느낌이라 무슨 르포를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ㅋ

마시마로 2017-04-18 18: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뭐, 문체 자체는 나름 매력도 있는 것 같아요...ㅎㅎ

Gothgirl 2017-04-19 05:10   좋아요 1 | URL
기자니까말이지유..

까치의 꿈 2017-04-19 08:32   좋아요 0 | URL
그렇쥬. ㅋ
김훈처럼 글쓰기도 기자 하면서 익혔다니까유. ㅋ

블랑코 2017-04-18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큰 산 넘으려면 멀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요오~~~~ ㅠㅠ

까치의 꿈 2017-04-18 18:40   좋아요 0 | URL
힘내셔유~ (ㅜㅜ)
레이먼드 챈들러 좋아하실 것 같아서 이런 문체 좋아하실 줄 알았는디...

블랑코 2017-04-18 18:47   좋아요 0 | URL
레이먼드 챈들러가 의외로 요상하게 안 맞아요 ㅎㅎㅎ

까치의 꿈 2017-04-18 18:49   좋아요 0 | URL
엌! 그랬나유? (ㅇㅇ;)
(뭘 믿고 맞는다고 생각했을까...)

마시마로 2017-04-18 18:50   좋아요 0 | URL
화이팅이요! 저는 뒤로갈수록 그나마 좀 나았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