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할머니와 우당탕탕 가족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136
김여나 지음, 이명환 그림 / 한솔수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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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처 몰랐다.
부산의 기장 바닷가에도 해녀들이 삶을 꾸리고 있다는 것을...
그림책의 배경이 제주도가 아니라 부산 기장의 젓병 등대 앞 포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사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량한 선입견으로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다가 '기장 미역'이라는 뜻밖의 간판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제주와는 바닷물색이라든가 주변 환경이 확연히 다르다.
그림 작가의 내공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가 하면 그림책 속 젖병 등대가 실제 모델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2009년 당시 부산이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로 10년째 선정되던 해였는데, 부산지방해양항만청에서 출산 장려를 기원하는 의미로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역성을 잘 살려낸 글과 그림이 참으로 다정하게 와 닿았다.
혼자 사는 해녀 할머니가 포구를 떠도는 개와 고양이들을 거두어 진짜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그림책 이야기에는 무엇보다도 따스한 미소가 담겨 있다.
명 대사도 많다.

"얘들아,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다정한 손길이 필요하단다.고양이와 강아지와 사람은 하늘과 바다와 육지처럼 다르지만, 마음을 열면 서로 어우러져 잘 지낼 수 있지."

"하늘에서 내려온 운무와 바다에서 밀려온 해무가 육지에서 만나면 한몸이 되어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단다.
우리 셋도 운무와 해무처럼 서로 보듬으며 살자꾸나."

고양이와 강아지와 사람이 어울렁 더울렁 함께 사는 동안 점점 서로를 닮아간다는 설정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이야기의 중심 축은 고양이 네야이다.

-예전에 나는 엄마와 여동생과 방파제에서 살았어.
시궁쥐와 술래잡기를 하고, 낚시꾼이 고기 낚기를 기다렸지.
낚싯바늘에서 고기가 팔딱거리면, 앞발로 낚아챘어.
한 입 먹으려는데, 갈매기가 내려와 물고기를 빼앗아 갔어.
나는 갈매기를 쫓다가 새파란 바다에 풍덩 빠졌지 뭐야.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주황색 테왁에 겨우 올라탔어.
세찬 파도를 넘을 땐 심장이 쿵했어.-

물에 빠진 네야는 구조되었지만 한순간에 엄마와 여동생을 잃고 혼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해녀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집에는 강아지 바우가 있었다.
바우도 태풍에 떠내려가는 것을 할머니가 구했다고 한다.
셋은 할머니의 말대로 운무와 해무처럼 서로 보듬으며 잘 지냈다.
할머니는 해산물을 팔아서 사료와 간식을 대고, 아침이면 횟집 청소를 도와 준 댓가로 싱싱한 생선을 얻어와 날마다 맛난 밥상을 차려 주었다.
바우와 네야는 할머니 곁에서 평화롭게 실타래를 굴리며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바우가 먼저 하늘 나라로 떠나갔다.
외롭지도 않게 무섭지도 않게...
그 후로도 해녀 대장 말숙 할머니는 포구를 떠도는 개와 고양이를 모른 체 하지 않고 집으로 데려왔다.
할머니의 집은 다시 식구가 늘었다.
하지만 고양이 노랑이와 강아지 포가 온 뒤로 네야는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가족이 모두 함께 재미나게 지내길 바랐지만 노랑이와 포는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것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속표지를 다시 펼쳐 보았더니 감회가 더욱 새롭다.
그림책 속 주인공들이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한가로운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들의 뒷모습에서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하늘 아래 핏줄 하나 없이 외로운 해녀 대장 말숙 할머니와 올 데 갈 데 없는 열아홉 살 고양이 네야와 열한 살 고양이 노랑이와 아홉 살 강아지 포는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지냈을까?
그러고보니 문득 나와 내 가족의 안부 또한 궁금해진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만 더 많이 행복해지기를...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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