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냄새와 함께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났지. 이 문장 하나에 이야기가 갖는 힘이 모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혼자만의 독백과 달리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되는 즐거움이 있다.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동안 각자의 내재된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거대한 물길이 되고, 굽이치며 흐르는 강물처럼 가난한 마음밭을 속속들이 일구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가 떠올랐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는 외삼촌의 귀신 이야기에 이목구비를 곤두세운 채 서로의 손을 붙들고 온기를 확인하곤 했었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도 새롭고 재미났었지. 그 이후로도 나는 늘 이야기에 목말라 하며 동화를 사랑하는 아이로 성장하였던 것 같다. '빨간 머리 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술술 지어내고 친구들과 즐기는 장면은 몹시 경이로웠으며 한편 부럽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니 고요도 그렇다.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고, 이야기 들려주기도 잘 한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능도 남다르다. 고요 옆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모여 있다. -고요는 남자 귀신 흉내를 내며 굵은 목소리를 냈어.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해졌지.-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까지도 고요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다. -고요는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했어. 그래도 옆집 할머니는 '재미있구나, 재미져. 아주 재미있네' 하면서 좋아했지.- 고요에게 곧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엄마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힘들어 하지만 고요는 다르다. "할머니가 겨울방학에 그랬어. 할머니는 이야기 속에 언제나 있을 거라고. 보고 싶으면 할머니가 해 준 이야기 생각하면 된대. 그러니까 너무 많이 울지 말라고. 그래서 난 하나도 안 울었어. 진짜야." 왠지 울컥하였다. 감동적인 장면 하나가 더 있다. 고요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 들었던 동네 사람들은 이제 고요를 대신하여 하얀 고양이 구름이와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고요가 남기고 간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그의 저서를 통해 미래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6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첫째가 스토리다.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으며 각자의 삶이 곧 스토리텔링이라고 하였다.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주인공 고요와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한겨울 찬바람을 막아주는 듯 마음이 몽글몽글 따스해진다. 이런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