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이 나무를 심다 딱따구리 그림책 37
앤 윈터 지음, 다니엘 미야레스 그림, 김경미 옮김 / 다산기획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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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칸파이를 처음 만난 날을 반짝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 한 권을 만났다.
호두파이를 좋아해서 가끔 빵집에 들른다.
그런데 하필 그 빵집에서는 호두파이 말고 피칸파이를 권하는 것이었다.
호두보다 좀 더 부드럽고 고소한 향과 맛이 느껴졌다.
덕분에 지금은 선호도가 바뀌었다.
피칸은 미국과 멕시코에서 주로 재배되는 가래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인 피칸나무의 열매이고, 이름의 유래는 돌로 깨는 과일이란 뜻의 '파칸'에서 왔다고 한다.
피칸나무 이야기를 이렇게 뜬금없이 꺼내는 이유가 있다.
그림책의 배경이 되는 나무가 바로 피칸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는 뒤면지에 실려 있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이야기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피칸나무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입히고 다양한 수작업을 거쳐서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책을 지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2024 에즈라 잭 키츠 수상작으로 평단의 주목과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그림책의 뒤표지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리뷰들을 읽으며 적극 공감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나무를 둘러싼 아이들의 즐거운 활동과 경험이 윈터의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 미야네스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그림은 두 시각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며, 나무와 나무를 둘러싼 사랑과 사람과의 관계를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_북리스트

과연 그러하다.
그림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마치 깡총하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듯한 독특한 구성 방식이 규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는 물처럼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상황을 매번 왔다갔다 하면서 어린 넬이 피칸나무를 심고 가꾼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가 된 넬의 손주들이 그 나무 아래서 신명나게 뛰어노는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우리 시골집 마당에 몇 가지 유실수를 심었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석류와 대추 열매를 수확하였다.
나무 심은 지 오륙 년만이다.
호두나무는 아직도 열매 구경을 못하고 있다.
이처럼 나무가 제대로 자라려면 긴 세월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나무에 매달리고 나무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의 독자들은 이 모든 순간을 단숨에 경험하게 된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장대한 서사를 품고 있으니 따로 읽어도 함께 읽어도 좋다.
앤 윈터 작가의 글은 구절마다 시가 되어 마음을 적시고, 다니엘 미야레스 작가의 역동적인 그림은 놀랍도록 섬세하여 감탄을 부른다.
특히 넬의 성장과 삶, 그리고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연결시킨 두 개의 장면 묘사는 압권이었다.

-나무는 자라고
 또 자라고-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 또한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가을 향기 가득한 해질녘의 평화로움이 축복처럼 다가오는 장면이다.
커다란 피칸나무 아래 대가족이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피어난다.
먼훗날 내 인생에 찾아올 가을날을 기다리며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범사에 감사하며 지극히 낮은 자세로 작은 나무 한 그루라도 심을 수 있다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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