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멸치 다듬기를 알까? 이상교 시인의 시에 밤코 작가의 그림이 덧입혀진 이 그림책은 멸치를 다듬는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멸치를 매개로 하는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매우 흥미롭다. '집중취재, 302호 사람들 멸치를 다듬어 어디에 썼나' 나란히 멸치를 다듬는 표지 그림 속 아빠와 아이의 모습이 신문 1면에 떴다. 하긴...보기 드문 풍경이긴 하다. 멸치를 다듬어 어디에 썼는지는 그림책 속에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하자. 콩나물이나 멸치를 다듬는 일은 아이들도 할 수 있을만큼 단순한 노작 활동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둥그런 밥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빙 둘러앉아 콩나물이나 멸치를 다듬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식구가 많다보니 그 양도 만만치 않아서 언제 이걸 다 끝낼 수 있을지 아득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동생들은 꾀를 부릴 때가 많아서 맏이였던 나는 늘 독박을 썼다. 임무를 완수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다리에 쥐가 나곤 했다. 나는 그렇게 컸지만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한 번도 시키지 않은 멸치 다듬기.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두 손 번쩍들고 자진하여 멸치 다듬기에 나서고 싶어진다. 아마도 멸치 다듬기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몸통 분리를 무한반복 하다 보면 두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다가 몸통 모아 놓은 데에 대가리와 똥이 가기도 하고 대가리와 똥 모아 놓은 데에 몸통이 가는 실수가 생긴다. 누구라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상교 작가는 이러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붙들어 진한 국물 맛이 우러나는 리드미컬한 시 한 편을 유쾌하게 써 내려 갔다. 시를 읽으면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르고, 생각만으로도 따뜻하게 말아낸 잔치국수가 그리워진다. "멸치 다듬을 거니까 신문 한 장 가지고 오렴!" 다 읽고 난 신문을 쟁여 놓으면 쓰임새가 많았다. 사실 지금은 종이 신문 구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그 시절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밤코 작가 또한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 작가가 보여주는 신문지 일러스트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림 읽는 맛이 쏠쏠하다. 곳곳에 숨겨 놓은 각종 화제들을 보물 찾기 하듯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새록새록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만큼이나 간절하게 드는 생각은 오로지 멸치 국수였나니...대가리 떼고 똥 빼고 멸치 다듬어서 내가 좋아하는 김치 국수 인증 샷! 힐링 되는 순간이었다. 멸치 다듬기를 해 본 사람, 안 해 본 사람 여기 모두 다 모여라. 새로운 문화 코드를 장착한 흥미진진한 시 그림책 한 권으로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보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