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을동이 있어요 알맹이 그림책 71
오시은 지음, 전명진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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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자주 드는 생각은 '감사함'이다.
평온한 일상이 계속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죽는 날까지 이렇게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싶다.
참으로 소박한 꿈이 아닌가!
그런데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러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4410.
여전히 주소가 남아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 곤을동.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 곳에 살던 사람들 또한 이처럼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며 평온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을 터이다. 
곤을동은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역사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수많은 희생자와 더불어 순식간에 삶터를 잃은 곤을동 사람들은 기만적인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인하여 그들의 생명과 일상을 그야말로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사라지고 없는 세계,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
지금 곤을동은 없지만 여전히 있습니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때때로 "제주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제주에 가면 곤을동을 먼저 갑니다. 곤을동 돌담을 거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곤을동이 있어요>를 쓰게 되었습니다. (작가 소개 중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발걸음이 어떤 곳을 향해야 하는지 실행하며 질문해 온 오시은 작가는 이 책에서 침묵 속에 갇혀 있던 4.3의 기억 속으로 간다. 전명진 작가의 그림은 그 통한의 문장 위에 떨어진 눈물처럼 툭툭 번진다.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서울예대교수- 추천사 중에서)

과연 그러하였다.
그림책은 기대 이상이었고, 김지은 교수의 말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찾아왔던 그 날의 비극을 나란히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부록 페이지에 실린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해석 또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화자는 바위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웠던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끔찍한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면서 회환에 차오르는 목소리를 내는 동안 나는 자꾸만 숙연해지는 마음을 속절없이 어루만져야만 했다.

동백꽃은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낙화하는 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툭! 떨어지는 붉디 붉은 꽃송이를 보며 '미인박명'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린 적이 있다.
가슴이 쿵 내려 앉을 때처럼 극도로 애절한 감정을 불러 오기도 한다.
이 페이지 또한 그러하다.

-와랑와랑 불꽃에
 불덩이가 된 마을
 나무는 떨고
 동백꽃 봉오리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동백꽃은 그 날 곤을동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름들을 대신하고 있다.
새빨간 동백꽃이 피고 질 때마다 언제까지나 기억해야만 할 이름들이다.

올해 제주 한달살이를 계획하고 있다.
제주에 가면 꼭 가 보고 싶은 장소가 한 군데 더 생겼다.
그림책을 가슴에 품은 채 곤을동에 가서 동백꽃 같던 고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진정으로 애도하는 마음을 전하려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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