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이 있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아이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글을 읽을 때 발음이 명확하지 않으며 특정 단어를 빠뜨리고, 문장을 통째로 삼켜 버리거나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기도 하였다. 난독증 증세를 시각화시킨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보면서 그 아이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 정도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 아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이 그림책을 통하여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느리게 읽어도 괜찮아." 지금이라도 그 아이에게 이 말 한 마디 따뜻하게 건네고 싶어진다. 허드슨 탤벗 작가 또한 어린 시절에 난독증을 겪었다고 한다. "제 이야기가 저와 같은 상처를 견디고 있는 아이들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길,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읽고 쓰는 어린 독자들에게 힘이 되길 바랍니다." (작가의 말) -샬럿 시디에게,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담아.- 표제지에 실린 헌사이다. '샬럿 시디'는 누구일까? 작가와는 어떤 관계일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진심 궁금해졌다. 그림책 속 화자인 '나'는 난독증을 겪고 있다. 난독증이란 지능과 시력, 청력 등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뇌신경학적인 문제로 인해 음운인식능력이 부족해져 읽기에서 어려움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놀랍게도 전체 인구의 15%가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역사적 인물로는 에디슨과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있다. 그러고 보면 난독증의 이면에는 남다른 창의력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반에서 책을 가장 느리게 읽어. 친구들이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난 여전히 첫 번째 문장을 읽고 있어. 이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야.- 난독증으로 인하여 천천히 한 글자씩 자기만의 속도로 글을 배우는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짙은 감동과 긴 여운으로 가슴 한 쪽이 시큰거렸다. -난 마음 속으로 낱말을 하나하나 그려 봐야 하거든.- -긴 문장은 너무 어려워! 문장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금세 길을 잃고 말아.- -수많은 글자와 페이지가 나를 잡으려고 쫓아왔어.- -처음부터 책이 무섭진 않았어.- -글자가 빼곡한 페이지는 나를 가로막는 벽 같았어.- 긴장감을 높이는 이런 문장들과 마주할 때는 독자 입장에서도 읽어내기 힘들었다. 그림책 속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다. -글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나 혼자 길을 잃고 말았어.-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자칫 절망에 빠진 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이야기는 반전의 급물살을 탄다. 주변을 돌아보며 더 많은 사람들과 너른 마음으로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이다. 이해와 관용, 도전과 극복의 빛나는 실천 의지를 배울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