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재미있게 읽었던 전래동화 '토끼의 재판'이 2023 버전으로 새롭게 나왔다고 해서 매우 궁금하였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다르지 않았으나, 리듬감 넘치는 말의 반복과 흉내내는 말을 통해 구연과 낭독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니 흥미로울 수밖에... 과연 그러하였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어른인 내가 읽어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스토리에 푹 빠져들 것이다. 고릿적이라든가 허방다리, 괴나리봇짐과 같이 요즘 잘 쓰지 않는 말들 또한 호기심을 유발하며 이야기에 재미를 더한다. 만화적 디테일이 뚜렷한 일러스트 보는 맛도 최고~ '토끼 캐릭터 넘 귀여워!' 상황의 변화에 따른 인물들의 표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압권이다. '살아 있네! 살아 있어!' 진정한 감탄사가 툭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토끼의 재판'에서는 당연히 꾀많은 토끼가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길 가던 나그네의 처지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다. -"내가 호랑이를 허방다리에서 꺼내 주었는데 은혜를 갚겠다는 약속을 휙 내팽개치고 나를 꿀꺽 잡아먹겠다고 하는구나. 이게 옳으냐, 그르냐?"- 왜 하필이면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그 길을 가야만 했을까? 힘껏 남을 도와주었는데, 오히려 나를 잡아 먹으려 드는 상대를 보면서 얼마나 억울했을까? 믿었던 참나무도, 순한 눈망울의 소도 내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 속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그네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눈 앞에 맞닿은 공포감을 이겨내고 극적으로 내뱉은 말이 결국 그를 살려 내었다. -"아, 잠깐, 잠깐만! 우리네 풍속에 삼세번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딱 한 번만 더 재판을 받아 보세."- 상상해 보았다. 만약 세 번째 재판관인 토끼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전래동화의 당연한 귀결이 아니라면 또 어땠을까? 삶과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작아지고 작아지고 또 작아지던 나그네의 모습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래서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토끼 덕분에 다시 일상을 되찾은 나그네를 위하여 만세! 또 다시 새롭게 읽는 옛이야기《토끼의 재판》만세!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