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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낳은 흙 이야기 ㅣ 미운오리 그림동화 10
오니시 다케오.류사와 아야 지음, 니시야마 료헤 그림, 고향옥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3년 8월
평점 :
고백하건데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흙을 밟고 서 있는 바로 그 순간조차도...
흙은 늘 그 자리에 그냥 있었거늘 '지구가 낳은 흙 이야기'라니 새삼스럽지 아니한가!
그런데 그림책을 읽고 나서는 솔직히 부끄러워졌다.
죽기 전에 누구라도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지구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앞ㆍ뒤면지는 흙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크고 작은 덩어리들과 덩어리의 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덩어리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화산재와 먼지, 모래 알갱이가 뭉치면 점토가 되는데, 이 점토들끼리 서로 달라붙어서 크고 작은 덩어리를 만든다고 한다.
덩어리의 틈에는 물과 공기가 있고, 그 속에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온갖 벌레의 똥과 죽은 나무와 풀도 자잘하게 부서져서 점토와 섞이면 더 큰 덩어리가 되는데 이 모두를 통틀어 흙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림책의 화자는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나무다.
그래서 더욱 친밀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표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도토리나무야.
내 밑에는 흙이 있어.-
이제부터는 흙의 생성과정을 설명하는 본문 내용을 따라가 보자.
-지금부터 흙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길고 긴 이야기를 들려줄게.-
평소 내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이 아름다운 문장들에 이르렀을 때 가슴이 우렁우렁하는 듯 하였다.
-아주 작은 흙덩이 속에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작은 생물이 살고 있어.
그 작은 생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숨을 쉬고 있어.
흙도 숨을 쉬고 있지.-
흙의 경건함으로 인하여 참으로 겸허해진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문장은 또 있다.
-나는 원래 자그마한 도토리였어.
내가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건 흙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지금은 내가 흙을 만들어 내고 있어.-
흙을 만들어 내는 숲의 나무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당연히 흙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흙은 위대한 모성과 같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 은혜롭게 성장시킨 뒤 죽은 생명을 다시 자신의 품으로 받아 들인다.
흙은 모든 생명의 발원이며 귀의처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으로 숲의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거나 산불 등으로 인하여 삼림을 훼손시키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죄악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림책 속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처음에는 무심결에 그냥 넘어갈 뻔 하였는데 부록 페이지에 실린 오니시 다케오 작가의 글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이 책 26쪽과 27쪽에서는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흙을 몇 종류 소개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구로보쿠토,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갈색 흙, 항상 얼어 있는 영구 동토, 그리고 열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색 흙입니다. 이렇듯 흙은 기후와 지형 등의 환경에 따라 색깔이며 특성 등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 지구에는 다양한 흙이 있어.
흙은 내리는 비의 양이나 날씨에 따라,
그리고 장소에 따라 달라져.
색깔과 촉감도 다 다르지.-
'고향 땅'이라는 동요의 노랫말이 생각났다.
언젠가 TV 화면을 통해서 본 실향민의 애절한 사연도 떠오른다.
고향의 흙 한 줌을 움켜쥐고 울부짖던 그 목소리가 새삼 들려 오는 듯도 하였다.
이처럼 흙, 또는 땅은 곧 우리네 삶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죽고 사는 일은 내가 살고 있는 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오니시 다케오 작가의 힘찬 목소리를 빌어 갸륵한 나의 마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고 싶다.
"흙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지만, 한 번 잃으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나무를 대규모로 베어 내거나 해서 흙의 덮개가 되어 주는 식물이 없어지면, 민둥 민둥 드러난 흙은 비바람에 쉽게 쓸려 갑니다. 거기서 흙이 다시 만들어지려면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 필요하지요.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흙이 만들어진 기나긴 시간을 상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 나아가 지구상에 살아가는 생물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