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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주먹 대 말주먹 ㅣ 가나 열매책장 1
유순희 지음, 김고은 그림 / 가나출판사 / 2023년 2월
평점 :
누가 이길까?
나는 당연히 말주먹 편이다.
약골이라 평생 진짜 주먹은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 보면 둘의 전력은 막상막하다.
공격력 505, 수비력 499, 전투력 822로 레벨이 똑같다.
아마도 유순희 작가는 처음부터 승패를 가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총 7라운드로 진행되는 대진표가 책의 목차가 된다.
목차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김고은 그림 작가의 일러스트 보는 맛 또한 일품이다.
만화와 일러스트가 혼재하면서 다채로운 화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기존 동화의 삽화 수준을 넘어서서 스토리의 중요한 축이 된다.
왕주먹 태오는 태어날 때부터 또래보다 몸집이 컸다.
특히 손이 유난히 컸다. 태권도를 다녀서 힘도 셌다.
태오는 자기를 지켜야할 때마다 상대에게 왕주먹을 휘두른다.
말주먹 선우는 마른 데다 키도 작았다. 점점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것 같아서 불안해졌다. 그래서 말싸움에서는 누구에게라도 지고 싶지 않다.
"안 버렸는데 이게 왜 저 구석에 있냐? 연필이 책상 싫다고 가출했냐?"
"네 양심이란 옷에는 미안함이란 단추는 안 붙어 있냐?"
"됐어. 너랑 말하느니 깡통을 흔들겠어."
"탈캉탈캉 깡통 소리 듣는 게 더 낫다고. 너랑 말하느니."
이런 선우의 현란한 말솜씨와 그에 반해 극도로 꺼벙한 태오의 반응이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았다.
말 한마디로 자신을 제압하는 선우의 기세에 눌린 태오는 자기도 모르게 책상을 쳤다.
가슴 밑바닥에서는 하고 싶은 말들이 꿍얼대지만 말소리로 나오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꽝! (버린 거 아니라니까.)"
"꽝꽝. (그 연필이 책상에서 굴러떨어졌나 보지.)"
"꽝꽝꽝꽝꽝꽝꽝. (애들이 청소하다 밀어 버렸겠지. 내가 버린 게 아니라니까.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나한테도 말할 시간을 달란 말이야. 나도 시간 주면 말 잘해. 다그치지 말라고.) "
아이들이 싸우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때 어른들은 싸움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적절한 지도 대책을 마련해야할 텐데, 이 책에서도 태오는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받게 된다.
상담 장면이 매우 리얼하지 않은가?
앞서 나는 말주먹 편을 들었다.
그렇지만 말주먹이 왕주먹보다 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말주먹 또한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 어쩌면 되돌릴 수조차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지금까지 선우에게 들은 말들은 금방 잊혔는데 이상하게 이 말은 자꾸자꾸 떠올랐다. 그 말은 나쁜 약 같았다. 어깨가 축 처지고, 눈동자가 풀리고,주먹에 힘이 빠지고,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말의 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싶을 때 흔히 인용되는 표현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말에 의해서 사람의 뇌가 98% 지배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입증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우리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도 있다.
입에서 나온 말이 씨가 되어 싹이 트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때의 열매는 선한 열매도 있지만 악한 열매도 있다는 것이다.
유순희 작가의 메시지 또한 다르지 않다.
-말과 주먹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어요. 서로 닮았지요.
그래서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그 힘은 때론 주먹보다 세고 아플 때도 있어요.
여러분도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대단한 힘이 있는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러분의 말이세상을 따뜻하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길 바라요.-
과연 작가의 바램처럼 태오와 선우는 말의 힘으로 서로의 세상을 밝힐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히는 가독성.
한 번 읽고 나면 또 읽고 싶어지는 중독성.
평소 책 읽기를 싫어하는 남자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매력 넘치는 스토리.
더 많은 아이들이 이 책과 만나게 되기를...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