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가 정말 아름답다. '서정적인 흑백 톤과 따뜻한 붉은 색의 조화'라는 표현이 그지없이 훌륭하다. 이토록 섬세한 감성이라니! 곰과 함께 그림 속에서 쉬어가는 그림책이라고 말하는 출판사 서평처럼 좋은 친구와 오랫만에 마주앉은 듯 기쁘고 설레었다.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림책의 부제도 맘에 쏙 들어왔다. '혼자 또 같이 있고 싶은 날' 이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문득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곰의 마음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 주인공 곰은 피아니스트다. 숲속 동물들은 곰의 연주를 좋아하였다. 연주회장으로 모여드는 동물들의 모습이 앞면지를 가득 채운다. 압도적인 감동이었다. 지난 여름, 독일 베를린 발트뷔네 야외공연장에서 경험했던 경이로운 인파가 생각났기 때문이었을까? 그림책은 앞면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뒤면지까지 이어진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귀하고 소중하였다. -이 숲속에서는 모두가 조용해요. 피아노 소리만 들리죠. 새들도 지저귀지 않아요. 들리는 건 곰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뿐이에요.- 피아노를 치는 곰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떠올랐다. 모두가 몰입하여 음악에 빠져 있을 때 으하아암, 난데없이 큰 하품소리가 피아노 선율 사이로 끼어 들었다. 아까부터 나무 위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얼룩말인가 했는데... 헉!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곰은 나뭇가지에 기대어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듣고 싶었죠. 하지만 어디서나 들려왔어요. "한 곡 더, 한 곡 더, 피아노 곰!"- 내가 뽑은 최고의 장면이었다. 우리의 주인공인 곰의 삶에 유의미한 터닝 포인트가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곰과 얼룩말의 만남을 축복하듯 달콤한 선율이 흐르는 듯 하였다. 이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얼룩말 몸피의 글자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 글자를 네덜란드의 그림 작가가 직접 한글로 작업하였다는 것인데, 완전한 문장은 그림책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열정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참신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카 베르스테헨 작가는 현재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으며 100권이 넘는 책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쉬고 싶다.' "아, 도망가고 싶다!" "난 여기 없어. 정말이야, 난 여기 없다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절규하는 곰의 목소리가 심장을 두드린다. 우리가 비록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겠지만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지쳐 있을 때라면 혼자만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곰과 얼룩말의 특별한 우정처럼... 그림책의 마지막 문장이 따뜻한 강물처럼 스며들어 내 마음을 적신다. "우리...따로 또 같이 있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