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Stop; '아무것도 아닌'을 위하여 보통날의 그림책 3
토미 웅게러 지음, 김서정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10월
평점 :
절판


지구 종말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사라졌다.
시들어 버렸다.
텅 비었다.
떠났다.
남은 것이라곤 황량한 고독 속을 배회하는 단 한 사람, 바스코 뿐이었다.
암울하게도 그림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치 타로 스프레드 위에서 죽음(DEATH)카드를 만난 듯 하였다.
타로 마스터들은 이 카드가 나오면 일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모든 것은 사라졌고, 콘크리트 구조물들만 나뒹구는 삭막한 공간. 이곳에 바스코가 서 있다. 품에 안긴 생명체와 그림자는 바스코에게 어떤 의미일까?
죽음(DEATH) 카드 속 태양일까?
더스트 자켓을 벗겨내면 매우 심플하게 흑백 처리된 겉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선명한 길이 보인다.
길이 있으니 멈추지 말라고 한다. 
"NON STOP!"
그 외침에 이끌려 나 또한 그림책 속으로 쑥 들어간다.

-미래를 맞이하고 있는 손주 펄리시티와 키어런에게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미래와 맞닥뜨려야 했고,  그림자처럼 나를 이끌어 준 나의 형 버나드에게-

개인적으로 헌사가 있는 그림책을 좋아해서 무척 반가웠다. 
비록 직접적으로 각자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를 향해 희망을 전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딱 때맞춰!'
총 8회, 라임처럼 반복되는 이 말은 매우 유의미하다. 그림책의 서사를 이어가는 중요 키워드로서 문맥상 정서 기여도가 크다. 독자들은 이 말이 반복될 때 마다 안도의 숨을 힘껏 내쉴 수 있다.
휴~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스코의 심정이 어땠을지 우리는 짐작조차 못하겠다. 
지구 종말 후에도 인간의 삶이란 것이 계속되는 것인지도 정말 모르겠다.

-콧노래를 부르고 휘파람을 불며,
 바스코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자신의 그림자 하나만을 의지한 채 무한 공포에 맞서는 외로운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림자가 벽을 가리켰다.
'DONT HOPE COPE'
희망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딱 때맞춰 바스코는 '아무 것도 아닌'과 조우하게 된다.
벽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 생물체는 자기 아내에게 편지를 부쳐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아무 것도 아닌'을 위하여 NON STOP-
바야흐로 바스코의 여정에도 목적지가 생긴 것인가!
역경과 고난을 뚫고 가까스로 해변으로 떠밀려온 바스코는 버려진 병원으로 몸을 피했다.
이번에도 그림자가 두 외로운 생명체에게로 바스코를 이끌었다.
'아무것도 아닌'의 아내도 바스코를 붙잡고 아기 포코를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바스코는 칭얼거리는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침내 돌봐 줄 누군가가 생겼다.
 딱 때맞춰!-

이 장면에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바스코의 품에 안긴 포코가 안간힘을 다해 바싹 매달려 있는 모습이 너무 짠해서 눈물이 났다.
그림책의 세계가 이다지도 깊고 넓다니!
영화에서나 다루어질 법한 소재가 그림책의 옷을 입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토미 웅게러의 유작이라고 하니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작가가 보내는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메시지의 울림에도 한껏 젖어보고 싶었다.
그 생명체의 이름은 왜  '아무 것도 아닌'일까?
바스코는 어쩌다가 홀로 남게 되었을까?
사방에서 무너져내리는 건물들과 쓰나미를 피하고, 버려진 배 위에서 탈출한 바스코는 어린 생명체 포코와 함께 다시 길을 걷는다.
비록 그 길이 의심과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고 해도 포코의 사랑스러운 얼굴만 바라보며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자신의 그림자가 이끄는대로 깜깜한 미로를 걷는 사람이 있고, 그림자가 주체적으로 방향을 제시한다는 설정부터 모든 상황들이 난해하였다. 
작가는 지구 종말에 대한 위험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최후통첩을 날리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뭇가지 없는 숲 그늘에서 새 순이 자라듯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며 꿈과 희망을 키우는 삶이 분명 존재하는 한 끝나도 끝나지 않을 우리의 이야기. 우정과 사랑, 그리고 믿음의 구원으로 마침내 회복되는 삶의 공식을 표방한 그림책의 세계가 경이롭다. 토미 웅게러의 응축된 에너지가 뜨겁게 느껴지는 최후의 작품이다.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공공선을 위하여 그 재능을 써야 한다. 그것이 재능을 부여받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토미 웅게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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