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 두 친구
이수연 지음 / 여섯번째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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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네 어깨 위의 짐, 이제 그만 내려 놓아도 된단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던 따뜻한 그 말 한 마디.
그때, 그 짐이 힘겨워 비틀거리면서도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해본 적 없는데 나를 향해 들려오던 작은 목소리가 있었다.
목소리는 언제나 나직했지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그 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그리고 꿈속으로 찾아오는 표범을 만나는 이들에게,

깊은 어둠을 본 만큼
더 밝은 빛을 볼 수 있기를.
짓눌린 어깨를 활짝 펴고 걷기를.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라며. -작가의 말-

막막함을 싹 걷어낸 먹먹함이 한여름 시원한 소나기처럼 나를 감싸안았다.
뒤면지에 수록된 작가의 말은 이토록 아름다웠다.
책장을 덮고, 내 안에 품은 온기가 서늘해질 때까지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림책이 처음 내게 온 날이었다.

반투명의 예쁜 트레이싱 페이퍼로 겉싸개를 한 그림책이 무척 특별해보였다.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그림 소설,
한 장면 한 장면을 귀하게 생각하며 천천히 읽었다.
톤 다운시킨 감각적인 일러스트와 진한 감동의 서사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왔다.

-어딘가 위태롭고 불안한 느낌을 주던 엄마의 표정.
열한 살의 나는 항상 엄마의 표정을 살피고 또 살폈
다.-

어린 소녀 토끼가 겪어야 할 불안과 공포, 상실감의 무게가 차가운 문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작가는 능숙한 솜씨로 이 모든 감정들을 느낌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시종일관 감탄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혼자 집에 남겨진 아이에게 감당못할 잔인한 시련이 찾아왔다.

-어떤 특별한 셀로판지가 내 눈 위에 얹어진 것 같았
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예전과 다른 빛으로 보였다.
한동안은 깨어 있어도 꿈 속의 어두운 숲 속을 끊임
없이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을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허걱! 놀래라!
성장한 아이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검은 표범이 바로 '그 녀석'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이렇게 보고 있으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끼의 곁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검은 표범 뿐이었다.
대학입시를 치를 때도,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귈 때도, 첫 직장 면접을 볼 때도 함께 했다.

-나의 검은 친구. 나에게 넌 어떤 존재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 줄 수 없는 나의 크고 무거
운 비밀 표범.-

답답하고 힘든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토끼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결혼을 했지만, 토끼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린다.
사랑의 힘으로도 치유되기 쉽지 않았던 어린 날의 상처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픈 새를 돌봐주게 되었고, 그때부터 검은 표범의 존재가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토끼의 꿈속에는 두 친구가 함께 나온다.
검은 표범과 노란 새는 토끼를 자극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셋이 함께 매번 똑같이 기억의 장소를 찾아간다.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현실과 꿈의 경계가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확신이 든다.-

현실 속 토끼는 남편인 수달씨의 관심과 사랑으로, 꿈 속 토끼는 두 친구와 함께 어울리면서, 스스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고서 차츰 안도하였다.
도망가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부터 진정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꼭 만나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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