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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맛
다리아 라벨 지음, 정해영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인생에 후회없는 선택이나 행동이 있을까.
나는 일말의 후회도 없는 행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황도 변하고, 나 스스로도 변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때 이럴걸, 그러지말걸 같은 후회는 어쩔 수 없이 생긴다. 우리 뇌 자체가 같은 것을 자꾸 생각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져있다고 하지 않는가.
후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계속 곱씹지 않게 완전히 까먹는 것인데 그게 어디 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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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맛 (#다리아라벨 씀 #클레이하우스 출판)의 주인공 콘스탄틴도 그런 후회의 순간이 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일지 몰랐던 마지막 대화에서 진심이 아닌 모진 말을 뱉었던 것을 잊지 못하는 콘스탄틴은 어릴 적 부터 말 못할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다.
엄마에게 말했더니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했던 그 능력.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끝맛’이다.
끝맛은 이미 죽은 사람이 먹었던 음식의 맛이 콘스탄틴의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이 끝맛은 맛으로 끝이 아니라 그 맛을 재현해 낸다면 죽은자를 불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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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바에서 손님에게 끝맛이 나는 칵테일을 건냈더니 손님과 죽은 아내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이토록 콘스탄틴의 후회와 찰떡인 능력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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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권에서는 생소한 음식들의 끝맛이 미식가가 소개해 주는 것 처럼 자세하게 적혀져있다. 그 음식들의 맛을 상상하며 맛 표현을 익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빔인간’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맛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이야기이다 보니 저승세계의 설정도 담겨있고, 이승에 갖힌 영혼들이 악령으로 변해간다는 익숙한 설정도 읽는 맛을 더해주는 흥미로운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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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음식, 끝맛이라는 능력, 두 세계를 잇는 끝맛이라는 능력, 주인공의 후회까지. 읽을거리가 매우 풍성하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비빔밥 한그릇 같달까?
물론 다 읽고나면 잘 먹었다는 포만감 같은 만족감이 밀려오지만 저승과 후회하는 단어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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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 온통 후회 뿐이다.
좀 더 잘해줄 걸, 이때 이럴걸 저때 저럴걸 이거 부탁했을 때 해줄걸, 좀 더 찾아갈 걸, 좀 더 같이 시간 보낼 걸 같은 후회들이 슬플 때는 물론 행복한 순간에도 불현듯 찾아온다. 그래서 그 미안함에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끝맛>에서는 이것마저 과연 옳은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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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을 취하는 것이 영혼들이 바라는 유일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서운함마저 든다. 머무는 세상이 달라져버렸다고 이제 잊지않고 기억하려하고 그렇게 내 곁에 두려는 것이 욕심인가 싶다.
나를 위해야 할지, 그 사람을 위해야 할지 답은 정해져 있지만, 내가 해온 것이 정말로 그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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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보내주는 것이, 놓아주는 것이, 잊어주는 것이 결국 나에게도, 남은 사람들에게도 바람직한 일임을 아픔을 겪은지 꽤 지난 사람들을 통해서 듣게 된다.
들어도 그것이 맞는 말임을, 알려준 사람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깨닫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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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을 평생 가지고 살아간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심지어 우리 뇌는 판단을 할 때 사용하는 경험은 평생동안 쌓아올린 경험이 아닌 최근의 경험만 이용한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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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가 이렇게 설계된 것도, 죽은 이들이 평안만을 바리는 것도 결국은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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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따라 많이 다르게 읽혀질 책이다.
엄청 슬픈 책이 아님에도 슬프게 읽힐 수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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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간 소중한 사람도.
우리 스스로를 위해 끊어낼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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