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배우다 -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온기에서, 시인의 농담에서, 개정판
전영애 지음 / 청림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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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한 작가에 푹빠져 그의 뒤를 따라 걷는 기분은 어떨까. 어떤 책의 저자가 비행기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를 손에 꼭 쥐고 그의 묘지를 찾아가는 여행이라 너무 설렌다 말하는 옆자리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백야>를 구입해서 읽었던 적이 있다.
이십대에 읽었음에도 이 책을 그 외국인은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이해하지 못했고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적 막연하게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국내에 정식 출간된 책들을 사모으고(읽지는 않네 그러고보니)번역되지 않은 책들은 원서를 사서 보물처럼 간직하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지금까지 하지 않고있다.

#인생을배우다 ( #전영애 씀 #청림출판 )을 읽고는 잊고있던 (좋아했던)작가를 떠올렸고 좋아했던 책을 한 권 구입했다. 괴테할머니로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괴테전문가인 전영애 교수가 쓴 <인생을 배우다>에는 괴테를 비롯한 거장들의 글과 그것과 관련한 일화들이 넌지시 담겨있다. 담겨있는 내용은 가볍지만은 않다. 나도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카프카의 동심지켜주기 프로젝트(궁금하다면 책을 펼쳐라!) 유대인의 탄압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시인한명을 살리기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그 목숨들을 짊어진 시인이 수용소에서 최선을 다해 써내 마침내 전해진 시의 이야기, 저자가 평생을 고국처럼 돌아다닌 타국 독일에서의 인연들 이야기 까지.
읽을 거리들이 매우 풍성하다.

이번에는 필사단에 참여하여 책을 읽게되었다.
필사의 단점아닌 단점이라면 필사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필사를 염두해 두고 책을 읽으면 필사하기 좋겠다 싶은 구절을 찾으면서 읽게된다는 것이다.

글에 온전히 순진하게! 집중하기 조금 힘들달까(필사, 독서 모두 초보라 그럴지도)그래서 마음이 와닿았던 글 전체를 필사하는 것을 택했다. 나와 같이 집-일터의 루틴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신선할 수 있는 저자의 일생이 담담하지만 자상하고 강요하지 않는 필투로 내 손에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인생을 배우다>라는 책 제목을 보면 서울대 출신 서울대 교수가 인생이란 이런것이다 알려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책 속에서 저자는 학생과 그 이후의 어른을 구분짓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그 기준은 무언가를 할 때 ‘계산을 하느냐 하지않느냐’이다.

계산을 하지않고 항상 100%진심을 다하는 학생시절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어른이 된 이후를 결정하는 것 같다. 저자의 수업을 들으면 끝에 자신의 글과 함께했던 친구들의 글이 묶여 ‘나의 책’이라는 결실로 맺어지는 것을 생생히 겪은 사람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최선을 다할 확률이 높다. 저자도 평생 학생들을 가르쳐온 어른이지만 평생 괴테와 독일문학을 배워온 학생이었다.
저자의 100%진심이 글에 잔잔하게 다정하게 서려있다.

나도 이래저래 계산을 끊임없이 하는 어른이지만 이 책과 저자를 보고 나도 책을 남은 평생 가까이 한다면 무언가를 배우는 학생의 입장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처럼 전문적으로 무언가를 업으로 삼아 배울 수도 있겠다. 인생 어찌될지 모르는 것이니까.

책이라는 물리적 성과가 내 인생에서 나오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미흡하게나마 책을 보고 쓴 글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지나간 길을 보여주는 E북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멋진 어휘와 문장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문장도 명문장이지만 이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보통의 글도 받아적을 수 밖게 없게하는 명문장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얼마남지 않은 내년의 목표 중 하나로 통필사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쓰기 전까지는 너무나 거창해보이는 목표였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읽는 즐거움은 물론 쓰는 즐거움도 알게해준 책이랄까.

따뜻함이 필요한 요즘 같은 나날에 딱 맞는
따뜻한 책이었다.

괴테할머니처럼, 따뜻한 글을 쓸 줄 아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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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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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러물을 애정하는 편은 아니다.
뭐랄까 괜히 내 돈과 시간을 들여 찝찝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다양한 책들을 올해 읽어나가면서, 마냥 행복한 감정을 남기는 작품이 아니라도 부의 감정에서 부의 감정을 일상 생활에서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의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다라는 것을 배웠다. 물론 인간이라는 종과 참혹한 현실에 네거티브한 기분이 며칠 갈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로 호러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여름비이야기 (#기시유스케 씀 #비채 출판)를 읽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잘 몰랐지만 호러계에서 아주 유명한, 말 그대로 호러 장인으로 정평난 기시 유스케라는 대가의 작품으로 선입견없이 첫호러를 마주하게 된 것은 호러입문에 가장 최상의 상태가 아닐까.

<여름비 이야기>는 기시 유스케가 10년에 걸쳐 쓴 ‘비’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으로 ‘5월의 어둠‘, ’보쿠토 기담‘, ’버섯‘ 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5월의 어둠‘은 치매를 겪고있는, 아내가 말다툼을 한 이후로 집을 나갔지만 왜 다퉜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퇴직교사 사쿠타에게 장마와 함께 옛제자 나오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비밀이 오빠가 직접 지은 하이쿠에 있을 것이라며 교사시절 하이쿠부 담당교사였던 사쿠타를 찾아온 것이다.
사쿠타는 치매임에도 열 편이 넘는 하이쿠를 전부 기억하며 전문가다운 해석을 보여준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보쿠토 기담>은 193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서양문화를 탐미하고 향락에 빠져사는, 그 시대의 젊은층을 대변하는 요시타케가 주인공이다. 그는 꿈에서 검은 나비가 계속 나타나서 기이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영력이 상당한 스님이 그 나비가 이끄는 곳이 지옥이라며 그 나비를 물리쳐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겁을 먹는 요시는 그 대사를 집에 모셔 하라는대로 따른다. 하지만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나비를 절대로 따라가지 마라는 대사의 말을 뒤로하고 나비를 따라 누각에 도착한다. 누각에서 만난 7명의 오이란 중에서 하나를 (잘)선택해야 죽음을 피해갈 수 있다는 대사의 말에 그는 단서를 잡으려 식은땀을 흘리는데…

마지막 이야기 <버섯>은 세 편 중 가장 재밌게(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본 작품이다.

할아버지이게 받은 유산으로 아이에게 자연과 함께한 삶을 선물해주겠다는 이유로 고급별장지에 거처를 마련한 스기히라 가정의 이야기이다. 자신은 버섯을 사랑하는 동화작가인 아내는 아이이게 도시에서 최고의 교육을 해주고 싶어하고 스기히라와 말다툼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메신저로 연락은 된다는 것이 다행일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마당 잔디밭에서 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버섯이 퍼져가서 온 잔디를, 온 집안을 뒤덮는다. 이것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 폰 카메라를 켜는 순간 깜짝 놀란다. 카메라에는 보이지 않는 것. 당연하게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가짜같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신기하고도 소름돋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청한 곳은 ‘산악신앙’과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 사촌형 두 곳이다.
그리고 사라진 딸이 걱정되어 사설탐정을 붙인 장모까지 나타나 결국 버섯의 실마리는 풀린다.
아내와 아이의 행방은?

스포일러를 하지않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문장 밑줄을 보여주고 싶어도 보고나서 친 밑줄은 의미심장한 의도가 담겨있을 수 밖에 없어 문장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정보 없이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이리라. 호러 문외한인 나에게도 이 책은 확실히 재미있었다. 하이쿠, 나비, 버섯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읽으면서 감탄스럽다. 대체 작가는 100페이지 남짓한 이야기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공부한 것일까. 적당히 알아서는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촘촘한 스토리텔링이 압권이다. 모든 페이지의 내용이 설득력이 있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반전에 그 이상의 충격을 받게 한다. 육성으로 ”?“가 터져나온다. 호러라는 단어로 가두기에는 그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담겨있다.
그 촘촘한 모든 것들이 내 안을 빈틈없이 채워 아쉬움 없는 독서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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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하다 앤솔러지 3
김남숙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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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 -하다. 그 짧은 단어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에 많은 어간이 들어가서 뜻이 바뀌는 건 당연하겠지만 무엇이 들어가는가에 상관없이 의지가 담겨있다. 비록 행위자의 의지가 아닐지라도.

#열린책들 의 #하다앤솔로지 그 세번째 #보다 는 다섯개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김남숙 작가의 ‘모토부에서’는 삼년전 언니와 각자의 남자친구 넷이서 다녀온 모토부 여행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모토부에서 언니의 남자친구였던 진호가 헤어지자는 언니를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잊지못하는 나, 모두 내탓이라며 애써 웃으려는 언니, 아무일도 없었던 듯 살아가는 나의 남자친구 우형. 나만 모토부에 머물러 있다.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소설가임에도 한단어도 적지 못한 빈 화면만 ‘바라보고’있다. 그러다 모토부에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쓰면서 나는 현실을 ‘직시’했다. 우형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끝까지 뱉지못하고 슬픈 표정을 짖고있다. 어쩌면 괜찮지 않인 사람은 마주하지 않은 언니와 우형.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지 않을까.

#김채원 작가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는 홀로 지내는 할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할아버지 댁을 찾아 할아버지는 ‘살피는’ 손녀딸들이 등장한다. 할아버지의 종묘원에서 누군가의 두발을 ’보고‘ 그럼에도 행복하게 할아버지의 나무돌보는 일을 돕는다. 안타깝고 상실된 상태에서 그 와중에서도 생명의 발아, 세 조손의 행복한 보통의 일상에서 위로와 기쁨을 ‘발견’한다.

#민병훈 작가의 ‘왓카나이’는 일본 최북단, 소야곶, 왓카나이에 ‘우연히’도착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살아갈 이유를 찾기위해라는 단하나의 목적을 위해 왓카나이에 도착한 그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있다. 도쿄에 살고있닌 친구를 회상하며 왓카나이 네글자만 친구에게 보낸다. 특별한 이유없이 온 왓카나이에서 자신을 바라보고싶어했다. 보이지않는 사할린 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왓카나이처럼 갈 곳이 없었지만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양선형 작가의 ‘하얀손님’ 은 하얀손님을 태운 운송기사의 이야기이다. 이상하리만치 이동경로가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진 운송경로에서 ‘너’는 조각조각 나있는 과거를 떠올린다 관음보살, 혼내는 큰누나,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의 장례식장, 십만원만 빌려달라는 큰누나 등등 , 옆에 있던 하얀 손님는 저수지에 얽힌 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렇게 하얀 손님의 목적지가 도착하고 그는 회사를 다시 목적지로 삼는다. 그들은 잠시 함께 여행한 것이다. 정면을 바라봐야 하는 운송기사 이기에 손님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시야의 가장자리이다. 그 가장자리는 앞만보느라 미처 놓쳤던 것들로 채워져있다. 그 시선에 담긴 것까지 모두가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모두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유주 작가의 ‘이사하는 사이’는 산희의 이사로 시작한다. 원래살던 곳 근처로 이사를 했지만 청소기가 보이지 않아 다음날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간다. 그러자 자신과 너무나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 그사람과의 대화 후 산희는 미국으로 향하고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만난다. 또 자신과 너무나 닮았다. 휴대폰 잠금이 열릴만큼. 그런 많은 산희들을 조우하며 여행에서 급히 귀국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또 다시 이사를 할 것이고, 낡은 청소기를 새 청소기로 바꿀 것이라는 몇가지의 다짐을 하며. 정확히 나는 아니지만 수많은 나의 부분들 중 하나씩이라도 닮은 사람들은 세상에 아주많다. 그 닮은 부분 하나가 너무나 친근하게 만든다. 그것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고 가끔.

이번 #보다 앤솔러지는 뜻이 명쾌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본 부분을 또 보게되고, 놓친 것은 없는지 또 샅샅이 보게되었다. 그렇게 우리도 익숙하고 명징한 것들만 좇느나 놓치고 있는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까지 모두 합쳐 나임을. 내 삶임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았다. 두눈 크게, 샅샅이, 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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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감정론 현대지성 클래식 70
애덤 스미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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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스미스의 논문 한부가 실려있다.
제목은 #언어의최초생성에관한여러고려사항그리고원초적언어와혼합언어의서로다른특성에관하여 로 긴 제목방큼 방대한 40여 페이지에 달한다.
이 논문에서는 언어가 없던 시절 무언가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우연히 낸 소리가 하나의 의미로 굳어져 고유명사가 생기고, 그 명사에 상응하는 다양한 대상들을 인식하면서 일반명사로 나아가고 그것들의 관계성을 나타내기 위해 형용사와 전치사와 같은 품사들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언어가 생겨났을까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덕감정론 이라는, 저자 #애덤스미스가 30여년에 걸쳐 6회에 이르는, 심지어 마지막 개정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새로운 챕터를 적는 새로운 저작행위와 다름이없는 정성을 쏟아부은 책에 왜 언어와 관련된 논문이 수록되어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3차 개정이 이루어질 때 실제로 저자가 수록한 논문이기도 하고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의 시작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음을 책을 덮을 때서야 깨달았다.

#현대지성 이 완역한 <도덕감정론>은 경제학자의 이미지가 강한(실제로 큰 족적을 남겼다. 행정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애덤스미스의 ‘보이지않는 손’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애정하는’ 책이다.

이 책은 공감이라고 번역되는 ‘Sympathy’라는 물줄기로 시작된 거대한 바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민, 동정이라고도 번역되는 이 단어를 애덤 스미스는 ‘공감’으로 사용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기쁠땐 함께 기뻐하고 슬플땐 함께 슬퍼하는(심지어 슬픔을 공유하고 공감받고 싶어하는 경우가 기쁨을 공유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이 공감으로 도덕, 윤리를 이야기한다.

이 책 시작 부분에 “인간은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복을 자신의 필요처럼 느낀다. 비록 그 행복으로부터 얻는 것이 그저 바라보는 즐거움뿐일지라도, 인간은 남들이 행복하길 바란다.”라고 적으며 이것이 공감의 정의라 말하고 있다.
적잖은 혼란이 머리에 그리고 마음에 일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보는 즐거움’? ‘남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 인간’이라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 저 마음이, 저 상태가 바로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도덕이라는 감정이다.
그러나 30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처럼 저 문장에 기시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않아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원인을 경제활동으로 인한 부의 축적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위대한 저서 <국부론>의 모티브로 <도덕감정론>을 꼽는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기적인 개인의 사사로운 영리활동이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뜻하는 용어이다. 여기서 이기심self-love는, 스스로를 위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공감을 ‘당연히’받을 수 밖에 없는 ‘도덕적‘행동을 함을 의미한다.
결국 지금의 시장경제에서는 이론과의 괴리감이 생겨 경제학의 폭발적 성장을 일으켰지만 말이다.

애덤 스미스가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일까?
우리가 타락해 버린 것일까.

애덤스미스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반복하는 입에 바른 말일까?
그렇지도 않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의 자신의 도덕을 기꺼이 따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랬다. 마지막 개정에서 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의, 관용, 용기 같은 ‘미덕’의 구성요소와 그 성격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적어 포함시켰고, 그것을 실천에 이르게하는 여러 학자들의 아포리즘을 상세히 적어두고 있다.

여기에서 위에서 말했던 언어학 논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복잡한 언어의 발달의 끝은 바로 나‘I’라고 말하고 있다. 수많은 인칭 체계를 완성시켰음에도 ’나‘에 주목하는 것은 이 글을 쓴 사람,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 전해 듣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초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애덤스미스의 도덕도, 도덕으로 나아가는 미덕도, 그것이 이르기위해 강조하는 중용도 각자의 ’나‘가 이해하고 공감하고 교환하여야 이루어 진다.
그러한 화학작용이 아포리즘에서도 작용한다.
도덕이 무엇인가에서 결국 ’우리(’나‘의 복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그의 모든 저서의 뿌리이자 우리 각자의, ‘나’의 뿌리같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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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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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유진 오닐의 희곡은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아들이 죽고, 아내와도 관계가 좋지 못했던, 자신이 죽은 뒤 25년동안 출간을 금지했으나 아내가 4년만에 발표한 이 이야기는 그의 자전적 희곡으로 한가족의 하루동안의 불안과 갈등이 담겨있다.

#Fin (#위수정 씀 #현대문학 출판)은 이 <밤으로의 긴 여로>마지막 공연을 마친 두 배우와 그들의 두 매니저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온갖 스캔들에 시달리다 이 연극으로 복귀한 기옥, 영화판에서 인정받는 연극배우 출신 스타의 연극 복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태인.
기옥은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화려한 커튼콜을 올라가면서도 즐겁지 않다. 이게 사는거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무슨 말을 할지 불안해 한다. 태인도 영화의 성공으로 가정이 경제적 안정을 찾았으나 연극판에 있었을 때 불미스러운 일들로 연극으로의 복귀를 반기지 않는 아내 혜림과 아이들과 소원해졌다. 술만 먹으면 진심이 아닌데 진심과 다른 말과 행동이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진다. 그 스스로도 진심이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이것이 본심인지도 모르겠다며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쫑파티를 끝낸 뒤 태인의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매니저 상호가 운전하던 차량이 빙판에 비끄러져 불이 붙어 나오지 못했다. 상호도 많은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기옥은 태인의 장례식장에 가 그를 애도하지만 그럼에도 기자들에게 찍힌 자신의 사진을 열심히 살펴본다. 흘러내린 볼은 아쉽자만 선글라스는 잘 고른 것 같다.
성공스런 복귀를 했지만 불안은 여전하고 그로인해 불면증에 시달린다. 매니저 수정이 퇴근했다가도 다시 돌아와 수면제도 챙겨주며 살뜰히 챙긴다. 기옥은 그런 수정을 고마워 하지만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수정도 많은 것을 가졌으나 그럼에도 자신이 실패했다 말하는 기옥이 밉다. 진짜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과 마음은 기옥을 챙김으로 기꺼이 나아간다.

상호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배우가 꿈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과 ‘지금은 아니야. 1년만 미루자.‘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왔고, 용기 내어 시작한 것이 바로 태인의 매니저였다. 태인의 대본을 읽고 연습리딩의 상대방을 하며 아무도 모르게 꿈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태인의 교통사고의 ’피의자‘로 아무도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는 것으로 그의 미래는 다시 닫힐 것임을 암시한다.

이렇게 네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의 환경에 놓여있으나 서로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못하는지 하지 않는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각자의 슬픔보다 나보다 더 가진 것에 집중해 흔들리는 두명의 자기자신과 마주한다.

유명인등인 기옥과 태인은 어느곳에서도 맘편히 털어놓을 수 없다. 수정을 계속 고용하는 것도 최측근인 수정이 자신에 대해 무슨말을 할지 몰라 염려했기 때문이고, 태인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유복한 집안의 딸이었던 혜림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네명 모두가 그렇듯, 우리도 매번 적어도 둘 이상의 성향으로 나뉘어진 스스로와 만난다.
옛날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의 머리위로 천사와 악마가 날아다니며 속삭이듯이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내가 끊임없이 전쟁을 치룬다.

삶에서 어떤 하나의 일이 끝나 엔딩 크레딧에 ‘fin’이라는 단어가 떠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무언가의 새로운 시작임을, 그 시작이 진취적인 것만은 아닐수도 있다고 이 책은 말해준다.

자기내면을 들여다보는 괴로움이 있을 수도 있고, 하기 싫지만 해야하기에 시작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우리가 본 엔딩 크레딧은 진정한 엔딩이 아니다.
하나의 단막이 끝났을 뿐.
우리의 삶이라는 무대는 아직 절찬리 상영중이다.

귀하고 귀하지 않음은 없다.
어느 하나 필요없는 역할이란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나보다 빛나보이더라도 내가 초라한 것은 아니다.
나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로 무대위에 있음을 잊지만 않는다면 수많은 나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무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하는, 마냥 달지만은 않은 쌉싸름한맛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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