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 이토록 멋진 작별의 방식, ‘간절한 죽음이라니!’
에리카 프라이지히 지음, 박민경 옮김, 최다혜 감수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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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라는 종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그럼 인간의 품격이란 무엇일까.
아마 자신의 자유의지를 매순간 제약없이 발휘하는 것이지 않을까. 물론 같은 인간들이 합의해 만들어 놓은 법의 테두리도 지키면서 발휘해야 ‘품격’이라 인정받을 테지만.

살아가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절실하고, 지켜져야하는 순간이 언제일까. 아마 생의 마지막이지 않을까.
아무문제 없고 건강한 몸을 가졌으나 중력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화를 통해 배우지 못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태어난 직후만큼, 수십년의 생을 통해 명확한 자기만의 기준과 행복을 정립하였는데 갓 태어난 태아처럼 자신의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더이상 나아지지 못하고 악화만 될 것이 예정된 상황이 (어쩌면 더) 괴롭고 불편하고 불안하지 않을까.

불치병이나 말기암 같은 더이상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상황유지만이 전부인, 고통을 경감시켜주기위한 마약성진통제나 투여하고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괴롭고 몸 밖으로 폐 속의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의식이 끝내 놓여지는 순간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티는 것이 존엄일까.

#아빠당신의죽음을허락합니다 (#에리카프라이지히 씀 #스마트비즈니스 출판)은 인간의 마지막 존엄으로 조력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실제로 더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 조용히 누워 숨이 멎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명치료를 하지마라는 말을 문득문득 내뱉으시는 부모님을 겪은 경험 대부분 있을 것이다.

조력존엄사도 연명치료거부의 일종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인 저자는 본인의 아버지와 조력존엄사로 마지막 인사를 한 순간 이후 존엄사 기관인 디그니타스에사 근무하며 다양한 환자들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해 자신이 오롯이 선택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정한 장소에서 품위를 잃지 않고, 젊었던 그때같은 안광을 빛내며 그 순간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전세계가 존엄사를 합법화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덤덤하게 그러나 사실적으로 적혀있는 글을 따라가면서 최근에 짝꿍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가족을 떠나보내며 우리의 죽음의 순간을 생각해 본 것인데, 결국 아픈 스스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병수발드느라 고생하고, 혼자 남겨질 상대방에 대한 걱정이었다. 혼자 남겨지는것은 안타깝지만(부부가 한날 존엄사를 택한 기사를 본 기억이 있지만 오롯이 삶을 누릴 건강이 남아있다면 더 누리기를 바란다) 병수발을 들게 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다라 씻지도 못하고 몸은 바짝말라 의식도 없이 고통스럽게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싫고(평생 잊혀지지 않는다)나도 내가 그런모습이 마지막인 것은 싫다.
이모습이 정말 인간의 존엄이 맞는가?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고, 의사들은 법적구속력은 없지만 의술을 사람을 살리는 일에만 쓰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며 살아간다. 그래서 더이상 손쓸 방법이 없으면 여명을 이야기하고 호스피스병원을 추천한다.
그러나 호스피스 병원도 만원이다.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야한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병원에 입실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진통제를 맞는 것 뿐이다.
치료적 의술을 행하지 않는다. 알부민같은 병세회복을 위한 약은 쓰지않는다. 그렇게 저무는 것이 맞는가.
그렇기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나의 모습으로 평화롭게, 그러면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마지막을 누릴 수 있는 존엄사가 말기 환자들의 선택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찬반이 매우 뜨거운 논제라는 것을 안다.
나도 디그니타스의 운영자처럼 건강한 사람도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반대한다.
그리고 선택지가 된다고 모두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만으로도 남은 삶을 더 의미있게 살려는 의지를 갖게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내가 나일 수 있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어 줄 것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기 전에, 각자가 원하는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보고,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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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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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고 했던가.
#투오브어스 (#줄리클라크 씀 #밝은세상 출판)에서 엄마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복수의 칼을 갈고 닦은 메그를 보면서 저 문장이 떠올랐다.

자신의 엄마에게 사기쳐 엄마와 자신을 집도 없이 밴에서 살게한, 그럼에도 승승장구해 선거에 출마하려는 론 애시턴을 파멸의 길로 이끌기 위해 달려온 지난 십년도 사기로 점철되어 있어 군자의 길이 맞는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포기않고 참고 인내하여 묵묵히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군자라면 그녀 또한 군자일테지.

그녀의 복수 연습과정에서 성폭행에 휘말린 기자 ‘캣’도 은밀히 복수를 꿈꾸는 또다른 군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칼날은 군자1, 메그를 향하고 있지만.

<투 오브 어스>는 권력과 힘이 강한 남성에게 억압당한 여성들의 복수극이다.
세상이 성민감성이 높아져 조심하려고 애쓰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노리는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있다. 뉴스를 보면 그런 여성들의 구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원이 밝혀지고 댓글로 그렇게까지 해야하냐, 심지어 원인없는 결과없다며 2차 가해까지 당한다. 그런 문제들이 사회에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 책과 같은 복수는 법의 테두리에서 여전히 불법이지만 그래도 통쾌함이 느껴진다.

범죄를 실행하는 그녀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 데이트 앱으로 저녁에 남자들을 만나며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 등 남성의 도움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런 삶으로 이끈 것이 남성이기에.
동기는 충분하다.

모두 각자의 아픔이 있다.
캣은 성폭행과 또 다른 압박이 존재했다.
바로 엄마다. 그녀의 엄마는 기자가 되기를 꿈꿨으나 캣을 임신하면서 꿈을 접었다. 그런 엄마의 욕망은 캣에게 족쇄가 되어 특종에 혈안이 되게 만든다.
메그를 끈질기게 따라 붙는 것에도 특종기사로 메그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목적이 있다.

각자의 아픔으로 누군가를 미워하지만 그럼에도 그와 동시에 감시하다보니 자연스레 관심과 관찰이 동반되고 그로인해 공감과 매력을 느끼고 복수의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두 여성은 어느새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군자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리 냉정하고 철저하게 준비했어도 한명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마냥 박수받기 어려운 불법적인 복수가 속 시원하게 만들지만 한바탕 만세를 외친 뒤에는 사회적 약자로 범죄에 노출되어 고통받는 여성들의 모습이 절절하게 그려져있고 이 책을 읽고 있는 현재에도 보통받는 여성들이 존재하고 있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 진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다크 히어로 같던 메그와 캣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책 본문 페이지 가장자리 4면이 검게 칠해져 있는 것이 불에 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도 복수라는 것에 자기 자신을 태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 표지가 온통 검기에 완전히 타고 재만 남은 것 같다. 그렇게 복수 끝에 찾아온 허망함을 나타낸 것일까.

책 속 두 사람이 자신을 바쳐 완성해낸 복수가 진정한 복수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말고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나도 남자이기도 하고 내생각에도 솔직히 이 이상의 복수는 없을 것 같다.

신랄하고 통쾌하면서도 약자가 권력에 맞서는 것은 어렵다라는 현실의 씁쓸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책이다.
해결책으로 약자들이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을 제시하고 있어 이 책을 읽는 약자들에게는 약간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보면서 마음 불편해질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문제작이라 부를 것이다.

이 책이 문제작 보다는 힘든 일상을 잠시나마 달래주면서 힘든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지혜를 엿보게 해준 가뭄에 단비 같은 책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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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오딧세이 - 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
김태윤.장민영.황종욱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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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한 종의 다양성이란, 유전자의 기원이 하나에서 시작되지만 각자의 환경에 맞게 비슷한 듯 하지만 구별되는 특성이 있는 개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말이나 소, 돼지 같은 경우 수많은 품종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인간이라는 종은 다양성이 매우 떨어진다.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 호모 사피엔스 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음식에서의 다양성은 무엇일까?
집에서 배달앱만 켜면 지역 국적을 초월한 많은 음식들이 한시간안에 내 앞에 도착한다.
다양한 음식들이 내 주변을 애워싸고있다.
멋진 다양성이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풍요로운 음식들이 있음에도 음식의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식재료가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때만해도 효과서에서 찬 바다와 따뜻한 바다가 울릉도 독도쪽에서 만나 절묘한 해수온도로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살아서 어류가 풍부하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제는 온난화로 인해 바다의 온도가 올라서 찬 수온에서 살아가는 해양생물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심지어 원래도 그 지역에서 겨우 소비할만큼 적은 양만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은 우리가 그 식재료와 음식을 알기도 전에 더이상 먹을 수 없는, 존재만 서류상에 남아있는 전설의 식대료가 될 판이다.

#로컬오딧세이 (#김태윤 #장민영 #황종욱 / #을유문화사 출판)은 바다와 연안에서 이렇게 사라져가는 식문화와 식재료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한끼 살기위해 먹는 것이 아닌, 식재료와 생태계, 기후변화와의 관계를 인지하고,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하고 그에 맞는 조리법으로 맛보는.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닌 문화적 경험이라는 ‘미식’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말똥성게 그라탱, 태국풍 골뱅이무침, 페루식 염생식물 요리, 그리스식 수블라키와 같은 토속적인 식재료와 타국의 음식문화와의 만남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보고 있노라면 드높은 숭고함은 뒷전이고 입에 침이 고이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다이어터들에게는 해로울 책이 될려나싶어 식사 후에 든든한 상태로 이 책을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가 어쩌다 보니 먹이사슬의 꼭지점에 위치하여 지구 상의 해가 되지않는 온갖재료들을 먹어오면서, 잊었던 우리가 우주에서는 얼마나 작은 존재이고, 우주까지 가지않아도 지구에서도 우리는 잠시 지구라는 여행지에 잠시 바캉스온 히치하이커일뿐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책 속에 멋진 색감으로 담겨있는 식재료를 채취하거나 직접 기르거나 가공 중인 생산자의 사진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잠시 머무르는 사람들은 있던 곳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나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머무르는 동안에도 깨끗하게 사용해야하는 것도 당연하고.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주목하는 이 책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자연스레 의식이 넘어간다.

괜시리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담긴 우주에서 지구를 돌아본 것이라는 파란점이 찍힌 사진이 떠오른다.
지구입장에서는 인간이 무엇을 잘 못먹었는지 모르겠는데 하나 생기더니 우두두두 온 몸을 뒤덮는 뾰루지 같은 느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게 우리 인류는 어떤 도움이 될까?
아낌없이 주는 지구에게 감사하면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심통이 생긴다.

이 책속에서는 ‘우니’로 불리며 고급 식재료로 분류되는 성게가 개체수가 많아지면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많이 먹어라 말하는 유일한 식재료이다.
성게를 먹든, 다른 것들을 아끼든 우리가 지구에, 생태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다.

멋진 빛깔을 띠며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멋진 바다가 계속해서 멋진 빛과 신선한 짠내를 오랫동안 자랑할 수 있기를.
그것을 바라는 것을 넘어 그 빛과 냄새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작은 것 부터 당장 실천하기를.
나부터 당장 달리러 나갈 때 쓰레기라도 주워야겠다.
사이코패스도 등산하며 휴지 줍던데 선천적 문제가 없는 보통사람들도 사이코패스보다는 더 나은 인간성을 가져야하지 않겠나?

먹는 즐거움과 환경을 지키는 것.
모두 이루어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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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한 니체 열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 열림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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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나의 이십대를 함께했던 아이돌 그룹 ‘빅뱅’의 G-드래곤이 긴 공백을 깨고 솔로앨범을 발매했다. 모두가 시대가 바뀐 만큼 가능하겠냐라고 생각했지만 보란듯이 여전히 아이돌이자 아이콘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런 GD의 앨범 제목은 위버멘쉬, #프리드리히니체 가 말하는 ‘초인’이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는 초인이란 초능력이 있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힘을 가진 수퍼히어로를 떠올리기 쉽지만 니체의 초인은 전혀 다르다.
니체의 또다른 유명한 이론은 ‘허무주의(니힐리즘)’이다.
‘신은 죽었다’로 대변되는 이 니힐리즘은 내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유구한 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온갖 규정들, 제약들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지말고 나만의 기준을 정하고 그것대로 살아가자라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모든 사회적 약속들보다 나만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그 기준들을 인생의 최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위버멘쉬, 초인이라 부른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는 위버멘쉬, 니힐리즘.
이것만으로도 #스트레스받는사람들을위한니체 (#박성광 옮김 #열림원 출판)이 얼마나 말이되는 제목인지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24시간, 365일을 백여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내지만 어느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않고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하루에 1시간도 누리기 어렵다.
애초에 나만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사회가 정해준 ’훌륭한‘사람이 되기위해 부모님, 선생님, 직장상사 등등의 눈치를 보며 평생을 살아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한 니체>가 말하는 스트레스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기위해 애쓰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말한다.

그래서 니체의 저서와 편지 등 모든 글에서 가져온 350개가 넘는 문장을 보여주며 자기만의 기준을 정함으로 자기자신을 세우고 자기 자신이 결여된 기준이 부합하려 애쓰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물론 진정한 나만의 나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그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이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을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라는 이유로 하지않으면, 그러면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인가?
이미 수없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매일을 지치고 있지 않나?
그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원인들을 잘 생각해보자.
직장 상사의 마음에 들게 일을 진행해야해서, 자식 입장으러 부모님이 바라는 모습을 응당 보여야한다는 부담,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다른 남자친구(남편) 못지 않게 해주어야하는 것, 어느것도 하기싫어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워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 자야 하는데 더 자기마음대로 뒹굴거리고 싶어 잠을 미루는 나,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 나 등등 수많은 스트레스들의 원인이 바로 내가 아닌 나의 외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함에서 오는 것이다.

내가 납득이 가지않는데 어떻게 즐거울 수 있고, 하고 싶을 수 있고, 기다려지고, 기대할 수 있겠나.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회생활이라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속해져 있으니 어느정도의 타협은 있을 수 있으나 나만의 기준을 명확히 해둬야한다.
그래야 내가 납득하고, 그로인해 동기가 부여되고, 노력이 즐겁고 스트레스가 아닌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 안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만든 내 스스로의 가치라는 스트레스가 없는 경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즐겁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면, 내 의지로 나아가지만 커다란 우주의 한 부분이라는 내 운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모르파티.

이런 아모르파티와 자기극복을 통해, 스트레스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자유롭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초인으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기를 응원하는 책이다.

자신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스스로 규정하고, 자유로워지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기뻐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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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문
서맨사 소토 얌바오 지음, 이영아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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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매일 사용하는 곳이 나에게만 특별하게 반응하여 세상의 비밀로 연결되는 상상. 누구나 해본 적 있을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보통의 런던이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또다른 런던의 모습같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판타지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워터문 (#서맨사소토얌바오 씀 #클레이하우스 출판)에 이런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은밀한 세계의 비밀이 담겨있다.
워터문. 달이 물의 표면에 반사되어 비친 달이 제목인 것 처럼 <워터문>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다른 두개의 세상이 등장한다.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한 세계에서는 라면집으로, 또 다른 세계에서는 아버지에게 ‘결국’ 물려받은 ’하나‘의 신기한 전당포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다.

이 전당포는 금붙이 따위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전당포로 들어와진 손님들의 ‘선택’을 저당잡는다. 평생 만약 그 때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며 곱씹어보는 선택의 순간이 누구나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이 전당포는 손님의 그러한 선택이 물건으로 구체화 된다. 어릴 적 그 사람을 만나러 갔었더라면 같은 선택의 순간이 버스를 탈 수 있는 동전 몇개로 표현되는 식이다.
손님 본인은 정확한 값을 알 수 없지만 전당포를 운영하는 이시카와 가문은 특수한 안경을 끼면 그 선택의 본모습을, 가치를 볼 수 있다. 그렇게 손님은 평생 후회, 아쉬움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가져가게되는 선택의 순간을 전당포에 맡기고 그 선택을 잊고 살아간다. 1주일 내에 다시 돌아오면 선택을 돌려주지만 그런 선택을 한 고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렇게 모아진 선택들은 두려움의 존재 ‘시쿠인’에게 바쳐지고 이시카와 가문은 두세계의 중간에서 전당포라는 운명이 하나로 정해진 다른 가능성은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누군가에 의해 전당포가 습격당하고, 이제 막 은퇴한 아버지와 전당포에 맡겨져있던 선택하나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전당포에 맡겨진 선택을 탐내지마라,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통과하지마라는 평생 아버지에게 교육받은 것을 모두 어겨야 하는 상황(사건 현장에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었다.)에서 ‘하나’의 삶은 운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정해진 미래를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건 당일 전당포를 찾아온 손님, 물리학자 ‘게이신‘과 함께.

아기자기한 매력적인 설정에, 같은 공간에 있으면 악취가 나는 두려움의 존재 시쿠인까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대표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생각난다.
세세한 묘사가 <워터문>의 세계를 망막앞에 또렷하게 아로새겨 주어서 그런지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져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이 작품을 빨리 알려주라고 호소하는 서평이 띠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에 몹시나 공감되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라는 말이 있다.
Birth 와 Death 사이에서 무수한 Choice를 하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인만큼 우리는 평생을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후회없는 선택은 없다. 선택의 순간에 조금이나마 달 후회될 것 같은 선택을 하게되니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을 두고두고 떠올릴 수 밖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선택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선택의 가치.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후회한다는 것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대변하는 것일까?
나는 선택을 중요하기 생각한다면 선택의 순간을 뒤돌아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함을 알고있다면 수많은 생각과 고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얻은 답이 그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라고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최선을 다한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아쉬운 선택들이 있다. 그렇다고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한다면 수많은 선택들이 쌓여 이루어진 지금의 ‘나’와 같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늘의 달과 물에 비친 달이 같은 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매순간 선택인 세계와 선택이라는 것은 없는, 그래서 선택이 보석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세계를 따라가다보면 저절로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선택들로 만들어진 우리의 삶까지 되돌아보게 된다.
부담없이 즐겁게 내 선택을, 삶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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